민족 대명절 설이다. 시댁과 친정 모두 가까이 있고, 설이라고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니 명절 후유증이나 부담 같은 건 없다. 다만 코로나 상황 때문에 여전히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식사를 나누는 것조차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지난 2년 동안 시댁과 친정에 가 있는 시간은 최소화하고 형제들이 따로 부모님을 뵈러 가기도 했다. 이번에도 코로나 상황은 마찬가지인데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명절같이 않은 명절을 또 보내려니 부모님께 죄송하기도 하다. 늘 괜찮다고들 하시지만 횡성 어느 식당 옆 테이블 할머니들께서 하시던 넋두리가 남일 같지만은 않다.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시간은 충분히 보내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 연휴 첫째 날 오후와 둘째 날을 어머님 댁에서 보내고, 사흘째 친정을 가는 날이다. 그동안 못 걸었으니 친정까지는 걸어가겠다며 약속 시간을 1시간 반 남겨두고 나 홀로 먼저 집을 나섰다. 30분은 친정까지 걷는 시간, 1시간은 그림 그리는 시간이다. 친정까지 걸어가는 내내 새로운 길을 찾으며 그림 그릴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설 연휴 이른 시간에 문을 연 카페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 뿐이다. 친정 옆에 있는 투썸에 자리를 잡았다. 친정에 올 때마다 커피나 케잌을 사러 잘 들르는 곳이다. 어느 해에는 다른 식구들은 집에 남겨둔 채 엄마와 여동생, 나 셋이서 빠져나와 수다를 떨었다. 그때 앉았던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조용한 카페에 홀로 앉아 그림을 그린다. 지하철 타러 오가며 수없이 보아왔던 동네 풍경을 종이에 담는다. 이런 사소한 풍경을 담는 게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싶은데, 그림을 그리며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재미있고, 어떤 부분을 그림에 넣을지 빼낼지 고민하는 것도 재미있다. 약속시간에 맞춰 그림을 마무리하고 친정에 도착했다. 우리 가족을 집 앞에서 만난 동생이 언니가 왜 없는지 자초지종을 듣고서, 나를 보자마자 묻는다. "그림 그리는 게 아직도 그렇게 재미있어?" "응, 너무 재미있어."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눈다. 동생이 문득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를 꺼냈다. 저자가 평소에 저지른 실수담을 모은 책이라는데, 그 책을 읽으며 내 생각을 했단다. 만날 때마다 자기를 빵빵 터지게 하는 나의 실수담을 능가하는 강자가 있더라며.
허당이라고 불리는 나는 바보 같은 실수를 많이 저지른다. 어렸을 적엔 나한테만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처음 탄 버스에서 하차문 마지막 계단까지 내려가 서 있다가 버스 문에 끼인 날 창피했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그런데 언제부터 나는 내 실수에 깔깔깔 웃게 된 거지? 실수를 용납하는 여유가 생길 만큼 나이가 든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수를 줄이는 것보다는 실수를 받아들이는 게 나에게는 더 빠른 방법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안경을 끼지 않은 채로 솥을 넣지 않은 전기밥솥에 쌀과 물을 부어 버린 날, 깔깔대며 그 이야기를 하는 내게 " 그 이야기를 어떻게 웃으면서 할 수가 있어? 나 같으면 울면서 얘기하겠는데."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
<빈틈의 온기>라는 책에서는 실수를 용납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한다는 교훈을 준다고 한다. 동생이 일하는 연구실에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고. 실수할까 전전긍긍하며 헤프게 웃는 것조차 바보 같아 보인다며 새삼 동생이 실수 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나의 실수에도 깔깔대고 웃을 수 있는 것은 나를 용납해주는 내가 속한 사회 덕분이기도 하다. 내가 실수했다고 해서 나를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함께 웃어주는 환경 덕분이기도 하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할 필요 없이 나를 받아들여주는 곳에서 나는 자유롭게 나를 용납하고 기꺼이 웃을 수 있다.
그동안 저지른 큰 실수들로 동생을 웃겨주느라 이번 주에 사자마자 부러뜨린 립스틱과 버스에서 떨어뜨려 박살을 내 버린 폰 이야기는 설 틈도 없다. 깔깔깔 웃느라 속상해할 틈이 없으니 실수투성이 주재에 매일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