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딱 그림 그리고 싶은 곳

by joyfulmito


오늘 아침엔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려고 한다. 어제 숙소 오는 길에 본 카페에 가보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오전에 할 일은 카페에서 하자고 제안했다. 가져온 쌀을 탈탈 털어 밥을 하고 삶은 감자와 사과는 마요네즈에 버무리고, 남은 김치, 돼지고기, 양파는 보글보글 끓인다. 남은 달걀 하나, 김 한 봉지까지 완벽하게 털어 두둑하게 아침밥을 먹었다.


10시. 오픈 시간에 맞춰 카페에 도착했다. 예쁜 외관에 끌려 여기까지 왔으니 카페 앞에서 사진부터 찍었다. 물론 우리가 첫 손님이다. 세련되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 덤으로 멋진 작품들까지 가득하다. 창밖으로는 담양의 상징, 메타세쿼이아 길이 내다보인다. 주문을 하러 가니 이 카페의 마스코트 달마티안이 계산대에 머리를 내밀고 우리를 맞는다. 개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봐도 너무나 예쁘고 귀엽다. 뷰, 음료, 분위기 모든 게 취향 저격이다. 이렇게 완벽할 수가. 딱 앉아서 그림 그리고 싶은 곳에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렸다. 아이들과 여행 중에, 더군다나 겨울 여행 중에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기는 쉽지 않다. 여행 중에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현장에서 여유롭게 그림을 그리기는 이번 여행 중 처음이다. 아이들이 더 크면 여행 중에도 어반스케치가 가능하겠지. 아직은 여행 중 어느 시간이라도 그림 그릴 짬을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니 세상 행복하다. 11년 전 여름에 봤던 여름 메타세쿼이아 길도 환상적이었지만 겨울 메타세쿼이아 길도 충분히 운치 있다.


아이들도 재빨리 문제집을 끝내고 종이접기를 하며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달마티안이 2층까지 올라와 쓰다듬어 달라며 우리 곁을 맴돈다. 나는 차마 쓰다듬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은 예쁜 달마티안과 인증 샷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남원으로 가야 하는데 평화로운 이곳에 마냥 앉아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


그러면서도 여기에 앉아 더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남원에 들르고 싶은 곳이 또 있기 때문이다. 여행 중 내 욕심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은 건지 정말 못 말린다. 카페에서 미적거리다 예정보다 늦게 출발했는데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내비 때문에 담양을 빠져나오는데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비가 데려가는 길로 가면 길이 막혀 있고, 다른 곳으로 아무리 가도 내비는 자꾸만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핸드폰으로 내비를 켜 보지만 깊은 시골이라 그런지 GPS가 끊어지고 만다. 같은 길을 얼마나 빙빙 돌았는지, 결국엔 어떻게 길을 찾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래도 어쩌다 보니 무사히 담양을 빠져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늦으면 바로 점심 먹으러 가야 하는데 오늘은 혼불 문학관에 꼭 가고 싶다. 물론 여기도 아이들은 관심 1도 없는 곳이지만 요즘 마침 「혼불」을 읽던 중이라 꼭 이번에 들르고 싶었다. “엄마 금방 돌아보고 나올게. 들어가기 싫으면 마당에서 놀고 있어.”라고 했지만, 밖이 너무 춥다. 덕분에 아이들을 데리고 문학관에 들어선 엄마는 최대한 빨리 문학관을 둘러본다. 문학관은 크지 않지만, 혼불의 주요 장면들을 인형으로 재현하고 사운드 샤워로 책을 읽어주어 조용히 듣고 있으니 몰입도가 너무 좋다. 사실 책은 묘사가 너무 많아서 읽어내기 쉽지 않은데 문학관은 마음에 쏙 든다. 이 문학관 덕분에 「혼불」이 내가 좋아하는 책 목록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철없는 엄마 기다려줘서 고마워. 엄마는 오늘 카페도, 문학관도 너무 좋았어. 엄마 감성 만땅 채웠으니 이제 밥 먹으러 가자.


노매럴 카페: 전남 담양군 금성면 담순로 66

혼불문학관: 전북 남원시 사매면 노봉안길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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