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을 해친 자들을 엄단하라
성도덕을 크게 어지럽힌 남녀 엄벌
[1] 호군(정 4품 무관) 신통례가 유부녀인 관노비 고음덕을 강간하였다. 음덕이 처음에는 큰소리로 울면서 발버둥을 치며 통례를 거부하다가, 뒤에는 제 발로 통례를 찾아가 서로 정을 통한 것으로 밝혀져, 형조 관원들이 음덕의 죄를 정하지 못했다.
나중의 행동을 기준으로 간통죄를 적용해 장 90대에 처하자니, 동일한 사건에 대해 남자는 강간으로 다루고 여자는 간통으로 다뤄야 하는 모순이 생겨 임금에게 애로를 아뢰니, 곧바로 판정이 내려왔다.
처음에는 통례가 사람을 보내서 음덕을 강제로 데려다가 큰소리로 울면서 발버둥 치는 음덕을 힘으로 제압하고 강제로 간음하였으니 통례만 강간죄로 처결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뒤에 가서는 음덕이 남편이 모르게 제 발로 통례를 찾아가 서로 정을 통했으니 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통례의 형을 한 등급 낮추고 음덕은 장 90대에 처하도록 하라(세종 12년 10월 25일).
형조가 통례의 형을 높이기를 청했다. 임금은 통례에게 얼굴이 돌아가는 구와나사 증상을 가진 77살 된 노모가 있음을 감안해 존류양친(存留養親) 특례를 적용한 것인데, 형조가 강간범은 독자라도 존류양친 대상이 아니라며 통례를 장 1백대와 유 3천 리에 처하기를 청한 것이다. 하지만 임금은 통례 모자를 불쌍히 여기고 권도(權道•목적 달성을 위하여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도)를 써서 장형만 집행하고 유배형은 돈으로 갚을 수 있게 해 줬다.
존류양친 특례란 조선의 국법으로 쓰인 《대명률》〈명례율〉편의,「사형수에게 나이가 많고 병이 들어 간병이 필요한 조부모나 부모가 있는데 집에 15살이 넘은 남자가 없고, 죄수의 죄목이 상사소불원(常赦所不原) 죄목에 해당하지 않으면, 임금이 죄수의 목숨을 살려서(存留) 집으로 보내주어 부모를 봉양(養親)하게 할 수 있다.」라는 조항을 말한다. 죄수가 장형과 유배 혹은 노역이 동시에 부과되는 죄를 범한 경우는 장형만 집행하고 유배나 노역을 돈으로 받고서 돌려줄 수 있게 하였다.
상사소불원 죄목이란 사면 혜택이 원천 봉쇄된 범죄를 말한다.《대명률》<명례> 편은 십악(十惡), 고의 살인, 관물 절도, 강도, 절도, 방화, 분묘 도굴, 사법 농단 등을 명시하고 있다. 십악은 《대명률》에 정한 모반(謀反), 모대역(謀大逆), 모반(謀叛), 악역(惡逆), 부도(不道), 대불경(大不敬), 불효, 불목, 불의, 내란 등을 말한다.
조선은 대명률을 국법으로 채택하면서 강상 범죄 위주로 상사소불원 죄목을 수정하였다. 성리학의 명분론(名分論)에 따라 백성의 신분을 상하, 존비, 귀천, 장유(長幼)로 나누기 위함이었다. 그 극단에 한 날 한 시에 나란히 태어난 <노비고가장조>(앞의 4번 글 참조)와 <부민고소조(部民告訴條)>가 있었다(세종 4년 2월 3일).
[2] 현감 임수산의 딸로 태어난 임복비는 아비와 어미가 일찍 죽어서 아버지의 첩인 소근에게 의탁해 살았다. 소근에게는 복비보다 손위인 어연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어연이 복비에게 연심(戀心)을 보이자, 소근이 어연과 복비를 집에서 내보내 둘이서 같이 살게 하였다. 복비가 숙부인 덕산에게 도움을 청하니, 자기도 어쩔 도리가 없다며 발뺌을 하였다.
어느 날 어연이 제 어미와 공모하여 복비에게 억지로 술을 많이 먹여 잔뜩 취하게 해 놓고 강제로 간음하여 복비가 임신을 하였다. 그런데 복비의 숙부인 덕산이 장차 복비를 서산 군수인 박아생과 혼인시키려 하여, 복비가 아비의 3년 상이 끝나지 않은 것을 핑계로 거절하였다. 복비는 아이를 낳은 뒤에 아생과 결혼하려고 한 것인데 덕산이 억지로 우겨서 혼인을 시켰다.
복비가 혼례를 마치고 아생을 따라 서산으로 갔는데 해산일이 박두하여 병이 심하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아생이 사실로 믿고 덕산으로 하여금 복비를 집으로 데려가 병을 치료하게 하였는데, 덕산이 아생의 말을 따르지 아니하여 복비가 어연과 함께 잠적하였다.
얼마 뒤에 두 사람이 함께 관원에게 붙잡혀 복비가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이자, 복비의 노비가 임금에게 글을 올려, 복비가 어연과 함께 달아나게 된 경위를 자세히 밝히고 복비의 목숨을 살려주기를 간절히 청했다.
임금이 승정원에 의견을 물으니, 처음에는 복비가 어연을 완강하게 거부하였으니 사형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임금이 복비를 불쌍히 여기고 그녀의 목숨을 살려서 먼 변방의 관노비로 보낼 생각으로 의정부의 의견을 물으니, 반응이 갈렸다.
영의정 황희는, 처음에는 어연을 완강하게 거절하였으니 죽이면 안 된다고 하고, 참찬 하연은, 후에 사이가 좋아졌으니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
임금이 황희의 의견을 따라서, 복비의 목숨을 살려서 관노비로 삼을 것을 명하니, 형조 판서 정연이 제동을 걸었다. 절개를 지키지 않은 여자를 살려주면 안 된다며 법대로 복비를 죽이기를 청하니, 임금이 미련을 버리고, 여자인 복비와 소근은 교수형에 처하고, 남자인 어연은 참형에 처하게 하였다.
복비와 어연이 붙잡혀서 사형에 처해지기 전에 덕산도 자취를 감췄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덕산이 잡히지 아니하자, 임금이 특명을 내려, 장차 사면이 있더라도 덕산을 반드시 검거해 평안도 여연의 병영에 영구히 배속하게 하였다(세종 18년 8월 22일).
[3] 군자감 부정(종 3품) 방구달이 능지기를 지낸 김수례의 딸과 결혼한 지 수일 만에 신부를 버렸다. 신부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자 뻔뻔하게 신부가 처녀가 아니라고 생트집을 잡아서 신부를 소박한 것이다. 임금이 알고서 구달을 법조문에 따라 장 60대와 노역 1년에 처하고, 노역을 마친 뒤에는 신부와 다시 합치게 하였다(세종 10년 10월 3일).
[4] 박자형이라는 사내가 전 현감 정우의 딸과 혼인하였는데, 처가에서 첫날밤을 보내더니, 신부가 처녀가 아니라며 혼자서 자기 집으로 갔다. 신부의 아버지 정우가 자형이 처가의 살림이 가난하고 신부도 키가 작고 뚱뚱한 것이 싫어서 연기를 펼친 것으로 보고 자형을 사헌부에 고소하였다. 사헌부가 자형을 의금부에 넘겼는데, 여러 날이 지나도 의금부가 자형의 잔꾀를 입증하지 못하자, 임금이 직접 나서서 정리해주었다.
형사사건을 처리할 때는 전체적인 맥락을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의금부는 고작 자형이 술에 만취하여 술주정을 한 일 등을 가지고 판결을 내리려고 하니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다. 신부가 실제로 처녀가 아니었다면 자형이 그날 밤이 가기 전에 신부를 버리고 자기 집으로 갔어야지 옳을 것이다. 그런데 자형은 신부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정우의 집을 방문한 제 집 유모에게 신부로부터 받은 예물을 주어서 자기 집으로 가져가게 하였으니, 처가에서 혼수로 마련한 옷가지와 이부자리가 허름한 것을 보고 사실이 아닌 일을 트집 잡아 신부를 버린 것이 확실하다(세종 27년 10월 9일).
의금부에서 다시 자형을 잡아다 국문을 진행해보니 과연 임금의 판단이 옳았다. 의금부에서 그대로 임금에게 아뢰니, 자형을 무고죄로 장 60대와 노역 1년에 처하고, 노역을 마치면 신부와 다시 합쳐서 함께 살게 하라고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