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감영에 쓴맛을 보여줘라

광주 목사 사망사건 부실수사 문책

by 조병인

전라도에 암행 찰방(어사)으로 나간 사헌 감찰(정 6품) 윤형이, 광주 목사 신보안이 기생과 간통하다 맞아 죽은 사실을 사헌부에 보고하였다. 승정원의 우부승지 김종서가 임금에게 진상조사를 지시하기를 청했다.


윤형의 보고에 따르면, 광주 목사 신보안이 고을의 기생인 소매와 간통하다 소매의 기둥서방인 전 호군 노흥준에게 현장을 들켜서 흥준이 소매를 결박하고 보안을 능욕하였다고 합니다. 흥준이 질투심이 폭발해 보안을 마구 때려서 마침내 보안이 죽었는데, 보안의 처자가 그 내막을 알면서도 보안이 관물을 횡령한 의혹이 불거질까 봐 보복을 자제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림에서 사건을 듣고 개탄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윤형이 흥준을 국문하여 마침내 단서를 잡았으니, 진상을 소상히 밝히게 하여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소서(세종 11년 11월 13일).


임금이 곧바로 사헌부 감찰 이안상을 광주에 파견하였는데,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도 있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안상이 광주에 도착해 신보안의 사망 원인을 추적하던 도중에 보안의 수족이었던 오한이라는 관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라 안상이 간략하게 줄거리를 정리해 긴급히 사헌부에 올려 보냈다.


평소 보안을 수행했던 오한에게 광주 목사 신보안이 죽은 원인을 물으니, 오한이 대답하기를, ‘관아에 있는데 사람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서 밖으로 나가보니 고을 사람인 노흥준이 목사를 때려서 상해를 입혔는데 뒤에 목사가 죽었다.’라고 하였습니다. 더 자세한 사연을 물으니 숨기고 대답하지 않아서 세 차례나 매질을 가하며 물어도 역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질을 멈추고 다시 보안의 사인을 물으니, ‘흥준에게 맞아서 죽었다.’라고 하여 오한을 옥에 가뒀더니, 얼마 뒤에 오한이 몰래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사헌부가 오한이 자살한 까닭을 알기 위해 즉시 전라감영에 공문을 내려 재수사를 지시하였다. 임금이 듣고서, 전라감영에 맡길 일이 아니라며 광주에 직접 사람을 보내서 오한이 자살한 이유를 밝힐 뜻을 밝히니, 이구동성으로 형조의 낭관을 보내기를 청했다(세종 12년 2월 10일).


임금이 형조 낭관 세 명 중에서 정랑(정 5품) 정길흥을 뽑아 사헌 감찰(정 6품) 이인손과 함께 광주에 급파하였다. 한 달 보름쯤 뒤에 두 사람이 돌아와, 광주 목사는 노흥준에게 맞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보고하였다. 보안이 홍준의 애첩인 기매와 간통하다가 흥준에게 폭행을 당한 것은 맞지만, 죽기는 뒤에 이질에 걸려서 죽었다며 임금에게 세 가지를 건의하였다.


첫째로, 부민으로서 고을의 목사를 발로 걷어차고, 온갖 욕설과 막말로 목사를 모욕하고, 관기를 제 멋대로 빼앗아다 여러 달 동안 집에 두어서 그녀가 복무를 못하게 하고, 사실관계를 묻는 관원에게 거짓으로 ‘감사와 감찰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서 장을 70대나 맞았다.’라고 대답한 흥준의 죄를 엄히 다스리기를 청했다.


둘째로, 아비가 홍준에게 맞아서 몸을 다친 내막을 알면서도 자식 된 도리로 보복할 뜻을 전혀 보이지 않는 보안의 아들 사봉을 사헌부에 내려 강상(綱常)을 바로잡게 하기를 청했다. 강상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함축한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강상 범죄의 전형은 자식의 존속 살상, 처첩의 남편 살해, 노비의 주인 살해, 강간, 간통 등이었다. 오상은 사람이 항시 몸에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을 말하며,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등이다.


셋째로, 보안을 걷어차고 때리며 온갖 욕설과 막말로 모욕을 준 흥준의 죄를 철저히 조사하여 진상을 밝히지 않은 전라감사 한혜, 도사 오치선, 감찰 이안상 등의 죄를 엄히 다스리기를 청했다.


임금이 듣고 나더니, 보안의 아들 사봉의 죄는 따지지 말고, 흥준은 장 1백 대를 처하여 형을 집행한 뒤에 먼 변방의 병영에 보내고, 보안이 기매와 간통하는 현장을 흥준에게 알려줘서 흥준이 보안을 폭행하게 만든 김전을 장 1백대에 처하게 하였다.


또, 한혜·오치선· 이안상 등을 모두 파면함과 동시에 광주목을 무진군으로 강등시키고, 호남의 행정거점 역할을 하던 광주의 계수관(界首官)을 장흥부로 옮기게 하였다. 얼마 후에 지역의 유지들이 흥준과 김전의 처자를 광주에서 추방하고 그들의 집을 헐고 토지를 몰수하니, 임금이 김전의 처자는 그대로 두고 그의 집과 토지도 몰수하지 말게 하였다(세종 12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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