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영양제
나는 동남아에서 8년째 살고 있다.
해외에 살면서 매일 엄마가 만들어준 한식을 먹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도 풍요롭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한식은 나에게 엄청난 에너지원이다.
어제 밤에 자려는데 잠은 안오고 아주 오랜만에 라면이 갑자기 땡겼다.
오밤중에 라면을 먹기는 그렇고 해서, 유튜브에서 라면 기내식편을 보았는데,
일등석에서 라면을 먹는 모습이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내일은 반드시 라면을 먹으리라 다짐을 하며 오늘 하루를 열었다.
밀가루가 몸에 안좋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자제하고 있지만, 오늘은 뜨끈한 라면 국물에 알타리 김치를 아사삭 베어먹으리라 다짐을 했다. 그래서 그동안 잘 참은 나에게 보상이라도 해주듯, 선심을 써보기로 했다.
오늘 선택된 라면은 오동통면이다.
나는 주로 계란을 풀어넣은 진라면이나 너구리나 해물베이스의 라면을 좋아한다.
지난번에 사놓은 라면을 보니 너구리와 오동통면이 있었다.
너구리 순한맛을 좋아하는데 오동통면이 거의 비슷한 느낌이라서 골라보았다.
찐 계란을 국물에 퐁당 담궈넣어서 먹는 것을 좋아해서,
먼저 계란을 스팀기에 넣고 라면 물을 올렸다.
라면을 끓이면서 알타리 김치와 파김치를 그릇에 담았다.
어제 기내식 라면 동영상에서는 김치를 안줬다는 평이 있었는데,
기내식 라면보다 더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면발이 두꺼워서 생각보다 좀 더 끓여주었고 그 사이에 계란이 익었다.
뜨거운 계란 2개를 차가운 정수기 물에 풍덩 담궈서 껍질을 까고 라면 국물에 투하!
뜨겁고 말랑한 계란이 라면 국물에 들어가는 순간 얼큰한 라면 국물과 단백한 노른자가 어우러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소파에 앉아서 먼저 인증샷을 찍고 수저를 들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비행기 일등석에 앉아 김치까지 곁들여 라면을 먹는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국물이 들어가는 순간 구수하고 얼큰한 해물 베이스의 라면 국물이 입안에 쫙 퍼지며 감탄을 자아낸다. 이 여운이 가시기 전에 알싸하고 젓갈맛이 베인 파김치와 알타리 무를 베어 먹는 순간 환상적 조합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매일 직원들 스무명과 부대끼며 바쁘게 일을 하지만, 잠깐 소파에 앉아 나만의 시간 속에 들어와 라면과 김치를 먹는 이 순간은 마치 십대때 비가 오는 날 방 안에 뒹굴며 누워 만화책을 보는 것 같은 그런 자유와 행복감을 준다. 밀가루는 몸에 안좋을 지언정, 분명 이런 행복한 기분을 느낀다는 것은 몸에 좋은 호르몬?이 나온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아는 지인이 집에 오셔서 1층을 지나가며 나를 보시더니,
"왜 라면을 먹어?"라고 하신다. 뭔가 안쓰러워 보이셨나보다.
나는 대답했다.
"특식 먹어요~"
일등석 비행기 기내식 라면보다 더 맛있는 라면과 김치를 먹었다.
해외에서 살면 여러가지 장단점이 있지만, 한식을 더욱 맛있고 특별하게 먹을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축복이고 감사하다.
해외에 계신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누구나가 누리고 또 소유하고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