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미와 진정성의 무대를 즐기자
연주회 무대 뒤 대기실에서 연주를 기다리는 한 학생이 긴장감에 손을 떨며 나에게 말한다.
“틀리면 어떡하죠?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요. 잊어버릴 거 같아요. 선생님.”
“준비 많이 했으니 머리와 손이 기억할 거예요. 틀려도 되니 즐기고 오세요.”
무대에 올라가 연주하시던 60대 학생은 결국 연주 도중 악보가 생각나지 않아 건반에서 손을 떼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창피한 마음에 연주회가 끝나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가 버리셨다. 나이도 많고 아이들처럼 잘 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여러 번의 거절 후 큰 용기를 내서 연주회에 참가하셨던 이 학생의 마음속에 무대의 두려움만 심어지게 된 것이 너무 속상했다.
무대는 어떤 곳일까?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되는 떨리는 장소일까?
연주자는 작곡가의 곡을 재해석하고 무대에서 감상자에게 전달한다. 이 과정을 가장 생동감 있게 전달할 수 있는 공감의 현장이 무대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대는 청중이 있는 모든 곳이다. 한 명의 청중이 있는 작은 방일 수도 있다.
나도 무대가 두렵고 무서웠던 적이 있다.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시험인 대학 입시 실기시험에서 악보를 하얗게 잊어버리는 큰 실수를 하게 되었다. 이후 악보를 잊어버리게 될까 봐 두려웠고, 무대는 항상 무서웠다.
이 공포증을 이겨낸 계기가 있다. 미국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수 있는 연주회에 참가했었다. 그 당시에도 무대는 무서웠지만 앞으로 협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 내서 참가를 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다. 그런데 연주 중에 ‘잊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고, 결국 또 실수를 했다. 그래도 이번엔 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실수를 하고 다음 부분은 잘해서 잘 마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시 집중을 했다. 연주를 마치고 또 실수를 하게 된 것에 실망을 하고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그때 스승님이 내 곁으로 다가오셨다.
“오늘 너무 잘했어.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집중해서 음악을 마친 게 나는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 네가 사랑하는 음악을 진실되게 청중에게 잘 전달했으면 된 거야.”
이 말은 나의 마음을 크게 위로했고, 무대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완전히 달라지게 만들었다.
얼마 전 무명 가수들이 경연을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봤다. 본인을 최고령 무명가수라고 소개하는 한 가수가 경연 도중 영어 가사를 잊어버리고 노래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실수의 무대를 보는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참가자의 목소리와 노래에는 진정성이 가득했고, 그래서인지 가사 하나하나가 내 가슴을 울리게 하였다.
‘그래 실수가 무슨 소용이야. 내 마음이 이렇게 움직이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음악 교육이란 주제의 강의에서 53개의 손가락을 가진 로봇과 인간이 같은 곡으로 대결하는 영상을 봤다. 로봇은 정말 틀리는 음과 박자가 하나도 없이 너무나 정확하게 연주를 했다. 로봇이 연주한 후 피아니스트가 같은 곡을 연주했다. 역시나 나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피아니스트의 연주였다.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로봇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인간미가 아닐까. 마음이 없는 기계와 사람은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강의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며 중요한 것은 인간성의 회복이고, 이 시대에 중요한 음악 교육의 역할은 음악 하기의 본질 회복이라고 했다. 기계가 많은 것을 대신하게 된 이 시대에 음악은 내가 직접 연주할 수 있고, 휴먼터치 즉 인간미를 보일 수 있는 표현의 수단인 것이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돋보일 수 있는 것이 음악인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이 시대에, 첨단 기술로 인해 감성이 메마르고 있는 이 시대에 음악으로 내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앞으로도 큰 의미가 될 것이다. 피아노 건반을 터치하면서 휴먼터치를 발현하는 것이다.
틀리는 것이 두려운가?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다. 한 번의 실수 없이 그리고 한 번도 틀리지 않는 기계의 연주에서는 진정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인간미가 넘치고 음악을 사랑하는 진정한 마음이 있다면 조금 틀려도 괜찮다. 청중과 진실된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무대에서 즐겁게 음악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같이 나누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