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45개월 은수
"헤이 클로버! 오늘 날씨가 어때?"
우리집에는 날씨와 뉴스를 알려주고 노래를 틀어주는 '클로바'가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궁금한 것이 있으면 클로버를 찾는다. 물론 답해주지 못하는 것들도 많지만 꽤 도움이 되는 신통한 기계다. 어느 날, 클로버에게 동요를 들려달라고 하고 신나게 춤을 추던 은수가 내게 다녀와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 클로버 목 아프겠어. 계속 노래 불러서. 좀 쉬게 할까요?"라며 클로버를 걱정했다. "응? 누구?" "헤이 클로버가 아까부터 노래를 불러서 이젠 목이 아플 것 같아. 좀 쉬라고 말해줄까? 걱정돼."라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헤이 클로버! 노래 꺼줘. 이제 쉬어." 라고 말하자 노래를 꺼졌고, "당신의 친절에 기분이 좋습니다."라는 대답을 했다. 은수의 마음을 클로버도 알아주었다. 그제서야 은수는 마음이 놓인 듯 웃으며 "이따가 다시 노래 부르자."라고 레고놀이를 이어갔다. 참으로 귀여운 우리 은수. 웃음도 나고 기특한 마음에 쓰담쓰담해주고 싶었다.
모든 것을 의인화하여 생각하는 어린이, 꽃도 나무도, 개미도 벌도, 장난감들도 심지어 가전제품까지 사람처럼 생각하는 어린이들을 보면 따스한 기운이 생긴다. 어처구니 없는 말도 아이에게 나오는 말로 들으면 사랑스럽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린이 입장에서 노래를 계속 불러주는 기계도 고마운 친구인 거다. 그 친구가 힘들어할 수 있으니 잠시 쉬라고 말해주는 마음은 아이에게 당연한 거다. 그래서 그걸 생각하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저 클로바도 쉬어가고, 엄마 핸드폰도 쉬게 해주자.'고 말해주는 거다.
'나무가 아플 것 같아. 나무를 안아줄래요.' '개미를 밟으면 안돼. 개미야. 조심히 지나가 내가 지켜줄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안돼. 우리 동네가 싫어해.' '자전거야 고마워. 네가 있어서 쉽게 왔어. 잘 닦아줄게.' '엘리베이터야 무거운 나를 데려다줘서 고마워. 다음에는 계단으로 올라갈게. 너도 쉬어.' 무엇이든 인격적인 존재로 보고 함께 잘 살고자 하는 마음. 잘 살려내려는 마음, 그게 은수의 마음이다. 모든 것을 살아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그 마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방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너무나 쉽게 사고 버리는 시대, 물질로 사람을 평가하는 시대에 은수의 마음이 이곳저곳에서 피어나면 좋겠다. 그래서 책 한 권을 정성스럽게 읽어가며 작가의 마음을 알아주고, 비빔밥을 먹으며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주어 내게 와 준 채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면서 지내면 좋겠다. 내게 살고 누리는 것들이 당연하게 쉽게 온 것이 없음을 알고 고마워하면서 잘 지켜가면 좋겠다. 무리한 발전이 자연을 아프게 한다는 걸 알아주고, 자꾸만 사달라고 조르는 마음을 넘어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될 거다. 아픈 지구도, 은수의 마음으로 회복되면 좋겠다. 그게 은수의 마음일 거다.
* 옆에서 은수가, 자꾸 내 이름이 나오니까 궁금하다고 말해달라고 한다. 현재 은수는 자기 이름을 읽고 쓸 줄 아는 아이로, 약 10개 정도의 단어를 읽고 쓴다. 이 글을 읽을 때가 오겠지? 부디 이 마음, 계속 갖고 살아가면 좋겠다. 고맙다. 은수야. 네 덕에 세상사는 방법을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