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이거 해보자."
"싫어. 안 할래."
"한 번만, 딱 한 번만 해보자."
"싫어. 무서워."
"무서운 건 아니야. 무서운지 아닌지도 해본 다음에 알 수 있는 거니까 해보자."
두돌 정도였던 첫째와 놀이터에서 자주 하던 대화다. 그 당시 은호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한참 고민하고 망설이이며 관찰을 많이 하는 타입이었다. 놀이터 가는 것을 좋아했지만, 미끄럼틀과 그네는 타지 않았다. 제 또래 아이들이 신나게 미끄럼틀에서 내려오고 깔깔 웃는 모습을 보더라도 자신은 타지 않겠다고 했다. 그네도 마찬가지였다. 은호가 좋아하는 것은 모래놀이와 시소 정도였다. 나도 처음 아이를 키우다보니 또래 아이들이 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내 아이가 못하는 것이 영 맘에 걸렸나보다. 놀이터에 갈 때마다 미끄럼틀과 그네를 도전해보자고 설득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라면, '할 때되면 하겠지.'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때의 나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아이의 중요한 일이라고 여겨 매번 권유했었고, 마침내 은호가 미끄럼틀로 올라갔다. 미끄럼틀 계단 위에 있던 은호는 슬라이드에 앉아 "엄마 무서워. 안할래."라고 소리쳤다. "거기까지 올라간 것도 대단한 일이야. 한 번만, 딱 한 번만 해보자."라고 응원했다. 큰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의 은호는 눈을 꾸욱 감더니 엉덩이를 슬쩍 움직여 미끄럼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얼굴 가득 웃으며 "엄마, 해보니 재밌어. 또 하자!"라고 말했다. 미끄럼틀에서 내려온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엄마인 나는 아이의 도전과 성취, 그리고 재미의 맛을 본 아이가 얼마나 기특한지! 엉덩이를 들썩이며 "그래, 그래. 시작이 반이래. 이제 더 재미있게 놀자."라며 칭찬해주었다.
아이를 키우며 그동안 알고 있던 단어가 찰싹 몸에 다가오는 것들이 있는데,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그렇다. 그 날 이후로 아이는 미끄럼틀을 신나게 탔고, 그네도 도전했고, 새로운 놀이기구도 "해볼래. 타볼래요."라며 적극적으로 도전했다. 아이가 미끄럼틀을 시작한 이후로 놀이터는 정말 모험의 공간이 되었고, 도전과 성공의 자리였다. 제대로 놀이터를 즐길 수 있게 된거다. 아마도 시작하기만 하면 반 정도 왔다는 표현을 만든 사람이 엄마들이 아닐까 싶다.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알고 있고, 정말 시작하면 반은 된 거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니까.
7월 첫째날이 넷째 아이의 두 번째 생일이었다. 아이에겐 여전히 시작할 것들이 많다. 과감히 시작하든, 망설이든 시작하든, 작은 시작이든 큰 시작이든, 시작하는 모든 것에 응원해주고 싶다. 하기 싫은 것을 안 할 수 있지만, 되도록이면 시작해보는 것에 겁내지 말라고, 시작하게 되면 보이는 세상이 다를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실 시작하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어려운 일이면서도.
아이의 시작을 보면서 내 인생도 돌아본다. 아이의 어린 시절을 보면 자연스럽게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나 역시 수없이 망설이고 쭈뼛대고 포기하자고 돌아섰다가 다시 생각하고 망설이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때 내가 그걸 했더라면.. 내 자리에만 뱅뱅 돌지 말고 시작했더라면 하는 후회도 많다. '시작'이라는 말이 주는 그 떨림, 아이를 통해 다시 발견하게 된다. 오늘 실패했다면, 또 다시 시작하면 되지, 그러면 또 반은 온 걸테니까, 계속 하면 된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이에게만 시작이 있는 건 아니니까.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으니까. 뭐든 '시작'하자. 끝이 오기 전엔 우리 모두에게 '시작'이 있다.
그리고 '시작이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