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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고, "아이들의 삶에서 질문을 찾는다"

<에듀플러스> 온라인 신문 기사

by 동그래

철학적 사고, "아이들의 삶에서 질문을 찾는다"


"아이들의 삶에서 질문을 찾는다"



http://www.edpl.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78



“싫은데! 내가 왜? 정말 싫은데!”



놀이터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아이들의 말이다. 그네를 타고 있는 친구에게 “이제 그만 내려와. 너 오래 탔잖아”라고 하면, “싫은데! 내가 왜! 정말 싫은데!” 하면서 거절하며 “나도 싫은데! 내가 왜! 정말 그만해!”하며 맞장구친다.



이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어떻게 이 말이 시작되었는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해져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교사 : 그 말은 왜 쓰는 거야?



학생 1 : 그냥 재밌으니까요.


학생 2 : 나한테 강요하지 말라고, 하기 싫다고 말하려고 하는 거예요.



교사 : ‘내가 왜?’ 라고 묻잖아. 그때 괜찮은 이유라면 할 거니?



학생 1 : 아니요, 절대 안 할 거에요. 그 이유가 맘에 안 들거든요.



교사 : 그걸 확신해? 정말 멋지고 내 맘에 쏙 드는 이유라면 싫은 것도 하게 되지 않을까?



학생 1 : 들어봐서 괜찮으면 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이유를 알아도 반대하는 이유를 들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싸울 것 같은데요?


학생 2 : 이유가 없을 수도 있어요. 왜 이런 게 궁금해요?



나는 그저 아이들의 말이 궁금해서 물었는데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흥미롭고 재밌었는지 아이들은 깔깔 웃었다. (별걸 다 궁금해 하는 놀이터 쌤은 너희들의 생각이 정말 궁금해.)



■ ‘왜냐하면’ 놀이하기



토요일 아침, 학교 밖 동네 모임인 ‘생각탐험대’ 아이들과 함께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놀이 중 ‘왜냐하면 놀이’로 모임을 시작했다. 이 놀이는 한 사람이 문장을 말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그 문장에 이어 ‘왜냐하면~’하고 이유를 말하는 놀이다.



학생 1: 나는 지금 뛰고 있어. 왜냐하면 학교에 지각했기 때문이야.


학생 2: 저기 하늘을 봐. 왜냐하면 무지개가 있기 때문이야.


학생 3 : 나는 친구를 만났어. 왜냐하면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야.



■ 함께 그림책을 읽고 생각나무 만들기



‘어느 날, 아무 이유도 없이(다비드 칼리 글, 모니카 바렌고 그림, 유영미 옮김, 책빛)’ 그림책을 함께 읽고 생각나무(인상적인 장면, 느낌과 생각, 질문)을 적어보았다.



■ 생각탐험대가 만든 질문



학생 1 :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을까?


학생 1,2,3 : 아무 이유도 없이 찾아오는 일이 있을까?


학생 4 : 왜 날개와 전혀 상관없는 넥타이를 팔려고 했을까?


학생 3 : 사장님은 날개가 생겼다고 왜 일을 못하게 했을까?


학생 5 : 여자는 어떻게 그 남자를 알아볼 수 있었을까?


학생 6 : 여자는 언제부터 날개가 생겼을까?



질문 만드는 과정에 교사도 참여할 수 있다. 철탐공 수업에서는 교사도 학생들과 같이 1/n의 역할을 맡아 참여하며 특정 권위를 가진 사람이 주도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상태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진행된다. 질문 앞에는 질문을 만든 사람의 이름을 적고, 그 질문을 만들게 된 이유, 질문이 나온 맥락 등에 대해 서로 질문하며, 함께 이야기하기에 적절한 질문을 선택하고 서로의 생각을 탐험한다.



질문에 대해 함께 탐구하기...“아무 이유도 없이 찾아오는 일이 있을까?”



교사 : 왜 질문이 궁금했나요?



학생 1 : 할아버지가 다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 이유가 없는 일도 있을 거 같았어요.



교사 :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학생 1 : 예를 들면. 갑자기 천둥번개치고 지진이 일어나고 그러는 거요.


학생 2 : 그건 이유가 있지 않나요? 날씨는 다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학생 3 : 이유가 없이 갑자기 비가 오는 경우도 있잖아요. 구름이 없는데도 비가 오고. 기후위기로 점점 날씨를 예측하기 어려워 진다고 들었어요.


학생 4: 무지개도 다 이유가 있어서 생기는 거고.. 기후위기라는 이유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므든 것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교사 : 그럼 각자의 입장을 정하고 <신호등토론>으로 해봐요.




교사 : ‘다 이유가 있다’는 입장에서 말해봅시다.



학생 1 : 제가 예를 들어볼게요. 오늘 아침 오빠가 나를 갑자기 때렸어요.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빠에게 물어보니 어젯밤에 제가 놀려서 기분이 나빴대요. 그래서 아침에 때렸대요. 그러니까 이유가 있는 거에요.



교사 : 당장 이유를 모를 수도 있지만 잘 알아보면 다 이유가 있다는 거네요.



학생 1 : 맞아요. 뭔가 자꾸 찾아내고 질문하면 이유는 다 찾을 수 있어요.



교사 :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는 입장은 어떻게 생각해요?



학생 2 : 그렇게 찾아내면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일은 진짜 이유가 없을 수도 있어요.


학생 3 : 이유 없이 그냥 하는 일들이 있잖아요. 어떤 목적이 없이 걷는 것이요.


학생 4 : 걷는 건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학생 5 : 걷는 건 몸에 좋고, 기분도 좋아지니까 하는 거지.


학생 1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거지 이유는 있을 거야.


학생 2 : 그런가? 아니야. 이유 없이 하는 것들도 있어. 내가 받아쓰기 공부를 안 했는데 100점을 맞았어. 그건 이유가 없는 거지. 그냥 된 거야.


학생 3 : 그건 네가 공부를 했었으니까 100점을 맞은 거지, 알고 있던 거나.


학생 4 : 그건 내가 100점을 맞으려고 하는 목적이 없었는데 그냥 된거니까 이유가 없는 거야.



교사 : 그럼 다른 예를 들어볼래요?



학생 1 : 로또나 복권 당첨은 이유가 없이 그냥 된 거에요. 그냥 번호가 맞아서 된 거죠. 내가 노력한 것도 아니고, 내가 당첨될 이유는 없었어요.



교사 : 이 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학생 2 : 오.. 그건 그럴 수 있겠어요. 하지만 복권을 내 돈으로 사고 당첨되길 바라며 기다렸으니.


학생 3 : 그렇게 바래서 된 거지. 그게 이유지.



교사 : 그럼 이유가 목적이나 바램, 원인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네요.



학생 1 : 네. 이유는 다 있는데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코로나도 이유가 있으니까 생겼을 텐데 그 이유를 잘 모르고 있어서 찾는 거에요. 그러니까 저는 이유는 있는데 아직 다 모른다는 게 맞을 거 같아요.


학생 2: 지금 다 몰라도 나중에는 다 알게 될 것 같아요.


학생 3 : 내가 로또가 된 이유도 뭔가 신이 나에게 좋은 일에 쓰라고 준 거 아닐까요?


학생 4 : 신은 그 이유를 다 안다고 해도 우리는 몰라. 그러니까 이유를 모르는 거야.


학생 5 : 그러니까 이유를 모르는 거지, 이유가 없는 건 아니야.


학생 1 : 아. 사람의 미래는 아무도 몰라요.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학생 2 : 이유가 있다고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일어나는 일도 있다고 생각해요.



한 학생이 머릿속에 있는 생각톱니가 빠르고 강하게 돌아가고 있다며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 이유를 왜 가져야 하는지, 이유가 없는 일은 정말 없는 것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질문이 정말 재밌지만 더 나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복잡하다고 했다.



교사 : 우리 좀 더 가볍게 생각해봐요. 만약 다섯 살 아이가 너희에게 와서 모든 것이 이유가 있어? 라고 묻는다면 그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쉽게 대답해줘야 해요.



학생 1 : 누나, 형아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어?


학생 2 : 응.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어. 너 유치원에 가는 것도 이유가 있어서 가는 거야.


학생 3 : 학교에 가는 것도 이유가 있어요?


학생 4 : 학교는 배우려고 가지, 친구들 만나고,


학생 5 : 학교를 안 가도 배울 수 있지 않아요?


학생 1 : 학교에 안 가더라도 우리는 배우긴 해야 해. 그래야 똑똑해지니까.


학생 2 : 그러니까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란다. 우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거야.



교사 : 잠깐 여기서 이유를 안다는 것은 그것을 해야 하는 것과 관련이 있나요?



학생 1 : 네. 그런데 이유를 안다고 다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교사 : 무슨 말이에요?



학생 1 : 이유를 안다고 해도 그걸 안 할 수 도 있어요.


학생 2 : 수학문제를 푸는 게 좋다는 걸 알아도 하기 싫을 수도 있어요.


학생 3 : 아.. 맞아! 아무리 좋은 이유가 있다고 해도 다 그걸 하진 않아요.


학생 4 : 이유가 없는 경우도 말해줄래요. 뉴스에서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때리거나 죽인 사건이 나온 것이 있거든요.



교사 : 그것도 다 찾아보면 이유가 나오지 않을까?



학생 1 : 어렵게 자랐거나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생 2 : 그런데, 저는 아무리 이유가 다 있다 하더라도 다 이해해줄 수는 없어요. 죽이는 거 그런 건요 나쁜 거니까요.


학생 3 : 선생님. 저는 제가 왜 태어났는지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학생 4: 그냥 엄마랑 아빠랑 결혼해서 내가 태어난 건데 이유가 없이 태어났어요.


학생 5 : 아니야. 엄마랑 아빠랑 둘만 지내면 심심하니까 즐겁게 해주려고 내가 태어난 거야.


학생 1 : 진짜 그 이유로 태어났을까?


학생 2 : 그것만은 아닐 거 같은데, 내가 태어난 것도 이유가 있을 거 같아요.


학생 3 : 맞아요. 철학에서 중요한 질문이 ‘나는 누구일까?’ 라는 건데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했다고 책에서 봤어요.



교사 : 내가 왜 태어났을까? 내가 누구지? 이런 질문이 아주 중요한 질문이었어요. 그것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고민하고 있고요. 다시 자기 입장을 정해볼까요?




■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는 수업



어린이들은 대부분 처음의 입장과 달라졌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 이유가 있다는 입장으로 바뀌기도 했고, 여전히 세상에는 이유를 찾지 못한 많은 사건들이 있고, 인생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유가 없을 수 있다는 입장을 택했다고 했다.



이 수업은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지만, 이유의 여러 의미와 특징들에 대해서 논의하다가 "내가 왜 태어났을까?" 라는 질문까지 나아갔다.



철학적탐구공동체수업에서는 논의가 학생들의 대화가 흐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학생들의 대화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똑같은 수업은 없다. 모든 참여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부터 이야기를 끌어와 더 나은 생각을 함께 형성해간다. 여러 생각들이 충분히 충돌하고 쌓여 가면서 자신의 입장을 더 튼튼하게 세워간다.



이 수업에서 이유에 대한 논의를 하다가 학생들이 삶의 근본적인 질문인 “내가 왜 태어났을까?”(내 삶의 이유)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 참 감사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이유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지,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서 있는 어린이들의 길에 이 시간이 도움이 되길 바래본다.



■ 이것이 정말 철학 수업일까?



철탐공수업을 실천한 지 십 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가 하는 수업이 철학 수업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고민이 들 때마다 어린이철학을 한국에 소개해주신 이초식 교수님(전 고려대학교)과 김혜숙 교수님(한국철탐연 고문)의 대화를 읽는다.



Q. 교수님, 제가 아이들과 철학 한다는 걸 제가 무엇으로 알아요?“



A. “아이들과 본질에 대해, 다시 말해 중요한 의미와 가치에 관해 대화한다면 철학이지."


A. “아이들이 스스로 잘 생각했는지 살펴보면 그것이 철학이지.”


A. “아이들의 삶을 기반으로 생각과 질문을 다루었는지 살펴봐야지.”



철학은 철학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철학 수업은 좀 더 중요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 다루었는지, 스스로 잘 생각하는 시간이었는지, 아이들의 삶에 기반한 질문과 생각이 드러났는가를 돌아본다.



철탐공은 정답이 없다. 그저 아이들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생각과 질문을 들을 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탐험대 학생들과 함께.(사진=남진희 교사)


※ ‘학교에서 철학을 한다고?’ 연재를 마칩니다. 철학적탐구공동체수업에 대해 더 알고 싶거나 함께 하길 원하시는 분은, 한국철학적탐구공동체연구회 홈페이지를 검색하거나 연구회에서 펴낸 <생각하는 교실, 철학하는 아이들, 맘에드림> 책을 추천합니다. 그동안 수업을 소개해주신 선생님들과 애독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출처 : 교육플러스(e뉴스통신)(http://www.edp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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