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아닌 온전한 그 아이를 만나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인상 깊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라는 질문에 나는 주저 없이 큰 아이와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을 대답했고 한때 다른 순간이 떠올랐던 적도 있지만 결국 여전히 나는 이 질문에 큰 아이와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처음 겪는 아픔 끝에 만난 아이를 간호사선생님이 내 가슴 위에 얹어 주셨다.
그리고 고개를 든 빨간 아가는 힘겹게 눈을 떠 내 눈을 마주 보았다.
그 큰 눈을 그리고 내게 오느라 애써서 온몸이 빨갛던 그 아이의 얼굴을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눈물이 나도록 아 예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 이후로 뭐 그다지 아름다운 육아를 하진 못했다.
의외로 그 순간을 제외하고는 뭐 그다지 어느 분유 광고처럼 막 '이 아이가 내 아이구나'라는 마음이 샘솟으며 모성애가 솟구치고 하질 않았다. 다행히 아이가 순해서 육아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좀처럼 강한 모성애가 생기지 않아 어느 날 언니에게
"이상해. 광고에서 보면 막 엄마가 애를 만나면 눈가가 촉촉해져서 이 아이가 내 아이구나 그러는데 나는 그냥 아 이쁘다 이런 생각이 들었지 쩡아가 막 내가 낳은 아이구나 그러질 않았거든. 그리고 여전히 막 애를 위해 대신 죽을 수 있고 그럴 거 같지 않아."
라고 나름 진지하게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때 언니는 나를 어이없이 쳐다보더니
"야 무슨 광고를 믿어. 애를 낳자마자 이 애가 내 애구나. 이 애를 정말 사랑해 그런 엄마가 어딨어. 키우면서 정성을 쏟고 시간을 보내며 아이를 사랑하게 되는 거지. 그리고 그렇게 어느 날 나 자신보다 소중하게 되는 거지."
라고 답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정성을 다했고 그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겪는 아픔과 자랑스러움을 내게 선물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아이를 위해 죽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듣는다면 역시 잠깐 멈칫하게 되는 엄마지만 그래도 결국 아이를 위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내 아이였다.
너무나 자랑스럽고 대견한
어제 오랜만에 아빠가 오셔서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 혼자 오신 건 처음이었다. 엄마생각이 많이 났는데 그중 가장 큰 생각은 '이제 나는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구나.'였다. 눈물이 났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어 큰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는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구나.
이 아이는 나를 통해 왔으나 이제 모든 순간을 오롯이 자신인 아이가 되었구나.
아이와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처럼
말할 수 없이 이뻤다. 그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이.
안녕! 반가워.
나는 네 엄마야.
다시 만난 그 아이에게 처음 마주한 그 순간처럼 인사를 건넸다.
너의 시작을 축하하고 응원해.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