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된 아들이 처음 맞는 방학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첫 월급을 봉투에 넣어 내게 건넸다. 나는 이 글을 감사히 받고 돈은 돌려주었다. 대견하고 고마웠다. 사장은 아들에게 정규직으로 일해볼 생각이 있는지 물었고, 학교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겨울방학에 다시 와달라 했다. 아들은 지난 두 달의 경험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어머니께서예전에 퇴근하고 왜 힘들어하셨는지 알겠어요.
내가 병원 가는 날, 아들이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동생이 만든 설거지거리 등이 있었다고 한다. 병원 다녀온 엄마가 돌아와 쉴 수 있게 청소를 하며 힘들었던 아들은, 나의 지난 수고에 감사함을 표했고 요즘 더 많이 도와준다. 밖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2차 출근을 했었던 나는, 아들에게 집에 오면 일단 씻고 쉬라고 한다. 아들 퇴근 시간 전에 에어컨을 켜며, 아들이 돌아와서 시원하게 하루의 피로를 잘 풀고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아버지께서 정리정돈을 왜 그렇게 강조하셨는지 알겠어요.
본사에서 현장점검을 나온다는 소식에 창고정리를 했다고 한다. 본인은 크게 어렵지 않게 했는데, 이렇게 정리하는 아르바이트생을 처음 봤다며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아들은 어릴 적 정리정돈 때문에 혼이 많이 났다. 나 역시 정리를 잘하지 못하지만, 물건에 자리를 정해주고 사용하고 나면 그 자리에 두는 것은 지키려 한다. 아이들에게도 그 점을 강조한다. 그것만 지키면 쓸고 닦는 것 외에 할 것이 없다는 것을.
두 달의 아르바이트로 받은 대가를 월급이라 표현하기는 뭐하지만, 아들과 나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다시 일을 시작한 나 역시 월급을 받는다. 과거 나의 월급일에 맞춰 가족 용돈, 각종 공과금 납부일을 지정했던 탓에 가족 모두 그날을 기다린다. 퇴직하고 남편의 월급일 이후로 바꿀까 잠깐 고민하다 그냥 두었다.
지금 받는 월급은 오래전 신입사원 시절 받았던 금액과 정확히 들어맞는다. 그래서인지 첫 월급을 받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라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 다시 출근을 하고 9시간 이상 사무실에서 근무한 후 집으로 출근해서 아이들을 챙기고 가사를 돌보면서 내 남은 생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오래전 조직장과 조직원으로 만나 내게 일을 주고 가르치고 성장시켜주신 선배는 아프다는 나의 소식을 듣고 종종 연락을 주셨다. 그리고, 표준치료를 끝내고 잘 지내고 있다는 내게 재택근무로 건강 챙기며 집에서 조금씩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고 나는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근무조건, 급여 등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시작했다.
과거의 나라면 못했을 것이다. 오래전이지만 함께 일하며 쌓인 신뢰가 있었고, 일에 대한 선배의 철학이 나와 맞았다. 가치가, 방향이 맞았기에 가능했다. 내가 고객을 찾아다니고 제안을 하지는 못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기업에 필요한 비즈니스 철학과 체계, 고객에 무엇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기획... 이미 선배의 머릿속에 가득한 그 생각들을 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해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 지점에서 나를 떠올렸을 것이란 걸 알기에 긴 말이 필요 없었다. 다만, 내가 몸과 마음을 챙기면서 일로써 자아실현도 할 수 있도록 나 스스로를 잘 보살펴야 한다는 것만 기억한다.
2학기 개강을 앞둔 아들은 오늘 마지막 출근을 했다.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과 아들의 뒷모습은 그 느낌이 매우 다르다. 엄마인 나는 남편의 등 보다 아들의 등이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엄마도 내 등을 보며 그랬을 것이다. 어머님도 남편의 등을 보며 그러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