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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Nov 21. 2021

10화. 기본학교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하기

https://brunch.co.kr/@japril123456789/92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하는 중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저런 제약들이 떠올라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을 시도하는 중이다.


2016년 6월, 2017년 10월, 2017년 12월, 2020년 5월

총 네 번의 수술을 했으며 마지막 수술을 한 지 1년 6개월째 암세포들은 고요하다. 지금 이 순간을,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하겠다."


2021년 10월 13일, 기본학교 2기 모집 공고문과 마주했다.


https://www.nwna.or.kr/bbs/board.php?bo_table=school&wr_id=1757


최진석 교수의 새말새몸짓 기본학교에서 학생을 모집한다는 공고였는데 동공이 커지고 가슴이 뛰었다.


주말에 수업을 하면 가족은?

성당에 나가지 못하는 날들이 있을 텐데?

서울에서 전라남도 함평까지 어떻게 다니지?

나의 체력이 버텨내어 줄까? 등의 생각이 밀려오며 잠깐 고민하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도전하고 싶었다. 이것만큼은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지원을 한다고 합격하는 것도 아닌데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미련과 후회가 남지 않겠는가?

인생 뭐 있나? 하고 싶은 것 하며 살아야지.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병에 걸리기까지 계속 일했고 지금도 반나절은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원했고 감사하게도 1차 심사는 통과했다. 1차 심사는 기본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은 이유에 대한 에세이 심사이며 2차 심사는 '운동과 정지, 완전과 불완전, 고통, 안정과 불안정' 중에 하나를 골라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다. 나는 '고통'에 대한 글을 제출했으며 합격자 발표는 다음 주에 있다. 3차 심사는 면접이다. 면접까지 가서 호접몽가를 직접 눈으로 보고 최진석 교수의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설렌다.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 해도 이번 시도는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현실을 고려하여 최적의 의사결정을 한 것이라 믿었던 것들에 대해,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그저 나의 희생이었고 포기였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고 싶었다. 산업공학을 전공하며 마케팅 공학과 인간공학에 관심이 생겼고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IMF 등의 현실이 발목을 잡았고 나는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나의 의지를 피력하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원하기만 하다가 가슴에 묻고 취업을 했다.


직장생활 15년 차 즈음에 좋은 기회를 포기했던 적이 있다. 정보전략부서에 속해 있다 보면 글로벌 IT기업의 각종 행사에 초청되는 경우가 있다. 국내 행사는 참여가 수월하나 해외 행사는 기회가 많지 않다. 선배들이 해외 행사에 다녀오는 것을 보며 언젠가는 내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 막연히 기대했었는데, 그 기회가 왔었다. 너무 좋았으나 동료들에 미안한 마음에 티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며칠 뒤 경영진단 공지를 받았다. IT기획을 담당하며 몇 번의 진단을 받아본 내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내가 하던 일을 다른 동료에게 넘기고 해외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내 기준으로는 불가한 일이었기에 포기했다. 진단 대응은 무사히 끝났다. 물론,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미래전략분야의 박사과정을 밟고 싶었다. 해당분야를 연구하는 대학이 많지 않은 데다가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했기에 내가 원하고 지원 가능한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학교 측에 연락해보니 하필이면 내가 지원하는 그 해부터 전담 연구자만 받는다고 했다. 즉,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나를 학교로 파견 보내주거가, 내가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은 잘했다고 칭찬하고 평가는 엉망으로 주었던 조직장 덕분에 회사 측에 그러한 혜택을 요구할 상황도 못되었고, 퇴사하고 공부할 용기도 없었기에 포기했다.


이 모든 포기들을 다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유학을 갔다고, 해외 IT 행사를 갔다고, 미래전략분야의 박사가 되었다고 해서 내 삶이 지금보다 나아졌을지, 암에 걸리지 않았을지 등은 알 수 없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저 현실을 고려하고 현실에 책임지며 열심히 살아내느라,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이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다. 그래서, 어딘가 훌훌 가고 싶으니 운전도 하고 최진석 교수의 제자가 되는 시도도 해보는 중이다. 어제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조카의 전화를 받고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어 불쑥 찾아갔으며, 오늘은 계획에 없던 미술관에 가보려 한다. 갑자기 보고 싶은 전시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같이 갈 것인지 물어볼 것이며 혹시라도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면 혼자 갈 계획이다.


기본학교에 참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노력하는 중이다. 정성을 다해 에세이를 썼으며 면접을 가게 된다면 그 또한 정성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기본학교의 합격여부에 관계없이 기본학교에 지원한 이유, 심사받기 위해 에세이에 담은 그 내용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매일 운전하고 걷는다. 체력을 기르고 운전도 잘해야 가족도 챙기고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미술관도 가고 함평도 갈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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