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조언에도 예의와 배려가 필요하다

by 정원

누구나 자기 몫만큼의 절망을 안고 산다.

내가 특히 힘들다 여기지만

사실 타인도 힘들다.

그래서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받는데도

예의와 배려가 필요하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가족에게 짜증을 내고 쓴 일기의 한토막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듯하다. 환자가 된 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고통을 토로했으나, 나를 위로해 주는 누군가도 힘들 수 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어느 날 친구가 보고 싶어 기차역에 갔다. 그런데 그 친구도 당시 여러 가지 문제들로 머리가 아픈 상태였다. 나는 별 것 아닌 일로 가족들에게 서운해서 무작정 집을 나와 걸었다. 막상 역 앞에 도착하니 친구의 복잡한 상태와 나의 현실이 다가왔다. 며칠 뒤 친구에게 그날의 일을 전했다. 친구 역시 내가 보고 싶다고, 내가 아파서 말을 못 했던 이야기들을 했다. 나는 몸이 아플 뿐이니 예전처럼 편하게 하자 했다. 이후로 우리는 병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저 컨디션 괜찮은지 정도의 안부를 묻는다.


하루는 동생에게 내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동생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내 말투에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고 그로 인해 상대방이 지쳤다는 것을 느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동생에게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이런 일들을 겪은 후 힘들다는 말이 줄었다. 다들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시간이 멈춘 듯 살고 있는 내가 그들에게 힘들다고 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열이 올랐다거나 백혈구 혹은 간 수치가 나빠졌다는 등의 내용을 공유한다고 해서 내 상태가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같이 사는 가족에게 내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내용을 공유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금은 백혈구 수치가 떨어졌으니 조심해야 한다거나 열이 내리지 않으니 응급실에 가자는 등의 내용이다.



암 환자가 된 후 주위에서 많은 정보들을 주고 있다. 그런데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을 넘어 특정 보조제, 의료기구, 음식, 의료기관 등을 권유하는데 그 강도가 매우 심한 경우가 있다. 어느 다단계 종사자는 내게 영업을 하기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가 권하는 약을 먹어볼까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나는 내가 연구하고 실행해서 나 스스로 검증된 것들을 신뢰하는 사람이기에 적당히 대응하고 말았다.

적당히 대응한다는 것은 이런 식이다. 회사를 그만두라는 이에게는 “그래. 그 정도면 할 만큼 했지.”, 이미 사기를 당한 사례들이 회자되고 있는 특정 요양원이나 보조제를 권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래. 알아볼게. 고마워.”, 살림이든 육아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이에게는 “그래. 가족들이 다 해주고 있어.”라고 한다. 동의하지 않는 뉘앙스를 비치면 말이 길어지고 서로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기에 피하려 한다.


그런데 내 진심은 이렇다. 나는 아직 퇴사를 결정하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해서 얻은 직장이고 나는 내 일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래서 치료가 끝나면 복귀했던 것이고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복직하지 않았더라면 재발이나 전이가 없었을 수도 있다. 허나, 다른 한편으로는 복귀에 대한 기대가 회복에 도움을 준 측면도 있다. 무엇보다 나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

내가 요양원을 가지 않는 이유는 내 일상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의 농담에 웃고 아이들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내 공간에서 읽고 쓰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는 그 소소하고 소중한 나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회복에 도움을 줄 것이다. 내 상태가 정말 많이 나빠진다 해도 요양원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 투병 중에 연명치료 거부 신청도 했다.


물론, 내게 강한 권유를 하는 상대방이 나를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에 그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 마음만 받고 싶을 뿐이다.


최근의 변화는 이러하다.


추천이나 조언을 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좋은 책이나 동영상 등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들을 공유해 왔다. 아프고 나서는 보험이나 건강식품 등을 권유하기도 했다. 지금은 상대방이 원할 때만 말한다.


“그래.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 노력한다. 이전의 나는 상대방이 말을 하는 도중에 어떤 상황인지, 어떤 마음 인지 알 것 같다며 말을 자르고 나는 그럴 때 어떻게 했다거나 하는 등의 말을 하는 편이었다. 말을 듣는 것보다 말을 하는 시간이 많았다. 해서, 조언을 구하는 어떤 이에게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고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재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 글을 쓰며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왜 그랬을까? 요즘은 그냥 상대방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다. 웃고 울고 눈 마주치고 손 잡아주며 그저 듣다 보면 상대방도 나도 마음이 풀리는 것 같다.


진정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는 내 얘기를 그냥 들어주는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내가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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