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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ul 30. 2019

우리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것

우리는 아니다

과거에 두려운 것이 죽음이었다면, 이제는 죽지 못하는 것도 죽음만큼 두렵다. 「자기 앞의 생」은 죽지 못할까봐 두려워 하는 로자와, 로자가 죽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모의 이야기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선생님. ... 선생님이 인정머리 없는 늙은 유태인이 아니고 심장이 제자리에 붙어 있는 진짜 유태인이라면, 좋은 일 한번 해주세요. 로자 아줌마를 고통스런 생에서 구해주세요. 생이란 것은 아줌마를 엉덩이로 걷어차버렸어요. 그놈의 알지도 못하는 하느님 아버지란 작자 때문이에요. ..."
 _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더 심한 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십칠 년여를 매달려 있은 셈이니까. 더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넣어주는 것보다 더 구역질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_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과학이 발전하고 나서 꼭 좋은 일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파 죽을 것 같을 때 바로 죽는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금은 아파 죽을 것 같은 사람을 낫게도 하고 낫게는 못하더라도 살려는 놓는다.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은 중환자실에서 수없이 많은 죽음을 지켜본 간호사가 쓴 책이다. 그는 여기서 기술 발전 이전의 모습을 살짝 보여준다.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던 때다.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돌아오신 할아버지의 첫 말씀은 "범이 내방에 들이지 마라. 범이랑 이제까지 잘 지내왔다. 마지막에 추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라는 것이었다. 내 남동생은 태어나던 날부터 할아버지 방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해온, 할아버지의 분신 같은 존재였다. 갓 태어난 핏덩이를 당신 방으로 손수 데려다 손수 먹이고 재우며 키우기 시작한 이후 할아버지 당신의 세상은 남동생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할아버지와 큰 남동생의 관계의 관계에는 할머니나 아버지와도 나눌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런 손자가 문 밖에서 발을 구르며 서 있는데도 할아버지는 끝내 남동생을 방에 들이지 않으셨다고 한다. ... 아마 할아버지가 생을 마무리하시는 데 있어서도 손자와의 품위 있는 이별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던가 보다.
 _김형숙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지금 우리의 마지막은 병원에서 결정한다.


카츠 선생님의 말에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병원에 갔다 하면 아무리 아파서 죽을 지경이라 해도 안락사를 시켜주지 않고 살덩이가 썩지 않아 주사바늘 찌를 틈만 있으면 언제까지고 억지로 살아있게 한다는 것을 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최후의 결정은 의학이 하는 것이고, 의학은 하느님의 의지와 끝까지 싸우려 한다는 것을.
 _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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