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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Sep 23. 2019

자기계발서와 불교의 변태적 결합

 _마크 맨슨 「신경끄기의 기술」

신기한 책이다. 자기계발서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 자기계발서인 척한다.



내 삶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자기계발서는 시작한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어. 성공하지 못하면, 그건 내 탓이야.' 자기계발서를 조금 투박하게 정의하자면 이렇다.


저자가 말하는 일반적인 자기계발서는 아래와 같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생에 관해 사람들이 흔히 떠들어 대는 조언ㅡ긍정과 행복으로 가득 찬 자기 계발 요령ㅡ은 사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조언은 개개인이 이미 자신의 결점과 실패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을 파고들어, 그것에 몰두하게 한다.


자기계발서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성장하자고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부족한 점만을 이야기하고 결국 스스로를 비하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삶의 태도를 이야기한다. 설득력 있다. 사실상 자기계발서의 탈을 쓰고 있는 불교에세이다. 형식은 기존의 자기계발서를 그대로 따라간다. 성공이라는 단어도 나온다. 자기계발서은 일반적으로, 재미있는 사례가 가득하고 읽기 쉬운데, 이 책도 그렇다.


성공을 결정하는 질문은 '나는 무엇을 즐기고 싶은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다. 행복으로 가는 길에는 똥 덩어리와 치욕이 널려 있다.


저자는 중요한 일에 신경을 쓰려면, 중요하지 않은 일에 관심을 끄라고 한다.


인생에서 마주 하는 모든 것이 아닌, 중요하지 않은 모음 것을 향해 "꺼져"라고 말한다. 진짜로 중요한 것에 쓰기 위한 신경을 따로 남겨 놓는다.
삶에는 또 다른 진리가 숨어있다. 바로 사람들의 웃음거리나 골칫거리가 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큼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 말이다. 그럴 수가 없다. 왜냐면 우리에게 고난이 부족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평소 불교적 메시지에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나처럼)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감정


저자는 행복을 좇지 말라고 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고 한다.


감정이 진화한 목적은 딱 하나, 바로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잘 살고 더 잘 번식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감정은 일종의 '피드백 메커니즘'으로 우리에게 어떤 것이 적합하고 어떤 것이 부적합한지를 알려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뜨거운 난로에 덴 고통은 우리가 다시는 그걸 만지지 않게 한다. 외톨이가 된 슬픔은 외로움을 느끼게 만든 일을 다시는 하지 않게 한다. 감정은 그저 우리를 이로운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해 설계된 생물학적 신호다.


감정은, 우리에게 이득을 주는 여러가지 피드백 중 하나에 불과하다. 여기에 매몰되는 것도 좋지 않고, 감정과 자신을 동일화하는 것도 안 된다. 감정은 늘 변하기 때문이다.



포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부작용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으로 볼 것이다.


고통스럽겠지만, 그게 다 신경을 다른 데로, 그러니까 훨씬 더 중요하고 힘을 쏟을 가치가 있는 일로 돌릴 경우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일이다. 가치관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내적·외적으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무엇보다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 뭘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할 것이다. 곧 알게 되겠지만, 그건 좋은 현상이다.


나는 항상 불안하다. 남들은 토익 책을 읽고, 자격증 책을 읽는데, 나는 이름도 없는 독립출판 서적이나 읽고 앉아 있다.



고통


고통은 피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함께 해야할 무언가, 견뎌야 할 무언가다. 눈 앞에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버리면, 어떻게 수영을 해야할지 고민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이 선택한 고통을 견디는 법이다. 새로운 가치관을 선택한다는 건 새로운 고통을 자신의 삶에 들여오는 것이다. 그 고통을 즐기고 음미하라. 두 팔을 활짝 벌려 환영하라. 그리고 고통스러워도 당신이 선택한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라.


고통은 견디는 그 순간에는 무섭고, 피하고 싶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다르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추억이 되기도 하고, 무용담이 되기도 한다. 그 순간에는 모른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뭔가 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자기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잃을 게 뭐가 있겠는가?
삶은 무지와 행위로 이루어진다. 모든 삶이 다 그렇다.


피하지 않고 고통을 마주할 때 우리는 무언가 해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절채절명의 위기에 몰렸을 때 오히려 위대한 성취를 이뤄낸다. 고통은 때로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해준다. 더 강한 사람으로, 더 현실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거절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나머지를 거절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머지를 거절해야,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거절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소비주의와 긍정주의, 낭만주의의 영향이다. 모든 시대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최근 일이다.


하나의 가치를 선택하려면, 나머지 가치들을 거부해야 한다. 결혼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선택했다는 건, 코카인 파티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거부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는다면, 아예 정체성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거부와 대립, 갈등을 피하려는 욕구, 모든 걸 동등하게 여기고 모든 걸 조화롭게 만들려는 욕구는 교묘하고 심각한 형태의 허세다.


허세


직장인이 되기 전에는, 누구나 스티브 잡스처럼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애플이라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착각을 한다. 허세다.


허세는 우리로부터 이것을 앗아간다. 허세의 중력은 모든 주의를 자아 쪽으로 끌어당긴다. 그 결과 우리는 내가 우주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중심에 있다고, 내가 세상의 모든 부담을 몸소 겪고 있는 사람이라고, 내가 그 어떤 누구보다 위대해질 바로 그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다.


죽음


결국 우린 다 죽는다.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나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는 주목받는 것과 성공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취급한다. 하지만 둘은 다르다.
당신은 이미 대단하다. 당신이 알건 모르건, 다른 사람이 알건 모르건 간에. 당신이 아이폰 앱을 출시했거나, 학교를 조기졸업했거나, 멋진 보트를 샀기 때문이 아니다. 대단함은 이런 것들로 규정되지 않는다.
당신이 대단한 건, 끝없는 혼란과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도, 어디에 신경을 쓰고 어디에 신경을 끌지를 계속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세도 버리고, 우리가 특별하다는 인식을 다 버려도 우리는 대단하다. 고통으로 이루어진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


일단, 조국에게 신경끄자.


★★★★★ 자기계발서와 불교의 변태적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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