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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Oct 21. 2019

모든 고3들아 수능 만점 받아라

그러면 어떻게 될까

이제 곧 수능이다. 아마 여기저기서 선의와 무의미가 반반 섞인 덕담이 쏟아질 것이다.


"모든 고3들아 수능 만점 받아라"


다 잘 보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경제학에 위치재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위치를 돈으로 사는 것이다. 비싼 돈을 주고 과외를 받는 이유는 100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다른 수험생보다 1점 더 받기 위해서다.


학벌은 또한 경제학에서 말하는 위치재(psitional goods)라는 성격을 지닌다. 위치재의 경우에는 그 재화가 주는 절대적인 만족이나 쓸모보다도 전체 재화의 서열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람들이 서울대학교에 가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육시설이 더 훌륭하거나 교수들이 더 잘 가르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름 아닌 '서울대학교'이기 때문이다. 즉, 특정 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는가보다는 그 대학이 전체 대학서열에서 몇번째에 자리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_김상곤 외 「경제학자, 교육혁신을 말하다」


학벌이 위치재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모든 고3들이 수능 만점을 받는다는 건, 내신으로 경쟁하라는 의미다.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느낌이 뒤늦게 들지만, 나는 원래 진지충이다.


모든 고3 학생들이 수능 만점을 받는다고, 뛰어내리는 학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수능을 보지 않은 아이들에게 낙인을 찍지 않는 것이다.


‘고졸’은 낙인이다.

“점심시간이면 고졸과 대졸 출신들이 나뉘어서 따로 밥을 먹었어요. 구내식당에 대졸자들끼리만 몰려 앉는 구역이 있었거든요. 함께 앉아 어울리며 밥 먹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괜히 그쪽으로 갔다가 무슨 소리라도 들을까 눈치가 보여 저도 고졸 동기들하고만 밥을 먹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유리천장’이 가시적 여성 차별의 장벽으로 치솟듯, 눈에 보이지 않게 둘러쳐진 ‘고졸 존(zone)’이 고졸 노동자들을 배제와 구별의 동심원 안에 가둔다.

최윤수(21·가명)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마이스터고등학교 금형제작과에 진학했다. 지난해 졸업 직후 경북 경산에 있는 삼성전자 1차 협력기업에 공채로 취직했다. 그는 금형을 점검하고 수리하는 부서에 배속됐다.

 _한겨레 「그 친구와 넌 학력이 달라」 2015-10-14 기사


나는 이른바 사람들이  '좋은 대학'이라 부르는 학교를 나왔다. 어쩌다 대학 이야기가 나오면, 제발 나에게 어느 대학 나왔는지 물어봤으면, 하고 바란다.


성별밖에 내세울 게 없는 사람들이 남자,남자, 운운하듯이, 나는 어찌 보면 학벌밖에 자랑할게 없는 사람인 거다.


갈수록 학벌의 낙인은 약해지고 있다. 더이상 학벌이 이후 진로를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문대 문과의 낮은 취업률 덕분이다. 학벌의 낙인이 흐려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그 낙인을 직장이 대체하고 있는 것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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