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게」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를 설명해주는 사건이 있다. 우리에겐 419, IMF, 세월호, 탄핵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성이 큰 사건은... 과거에는 IMF였고, 그리고 지금은 세월호일 것이다.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가 아니지만, 문학도, 영화도 시대에 속해있다. 분명 세월호의 영향권에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나오는 작품들은, 작가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세월호의 경우는 워낙 비극이다 보니, 표면화되지는 않았다. 다 큰 성인이 죽어도 슬픈데, 아이들이었다. 5년이 지나서야 슬슬 세월호를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 상업영화로는 「선물」, 「악질경찰」이 있고, 독립영화에서는 이제 이야기할 「한강에게」다. 소설은 조금 먼저 있었다. 「쇼코의미소」에는 세월호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중국에 갔다고 하는 지민이. 지민이 이야기가 나오면 울음을 터트리는 가족들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세월호를 떠올리게 된다.
내글 = 스포일러 (근데 이거 인디영화다. 어차피 안볼거잖아.)
「쇼코의 미소」와 비교하면 「한강에게」는 비교적 노골적으로 세월호를 이야기한다(고 나는 판단한다). 영화가 시작하는 부분에서 주인공이 광화문 세월호 집회에서 발언하는 장면이 몇 초 나온다. 그 이후에 단 한번도 세월호 이야기는 없지만, 이 장면으로 나는, 이 영화를 세월호 영화라고 규정한다. 세월호 영화라는 표현이 너무하다고 한다면... 좋다. 그렇다면 한발 물러서서, 사랑하는 사람이 익사하고 살아남은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조금 뭉뚱그려 설명하겠다. 그래도 의미는 비슷하다.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잃은 주인공 진아는 시를 강의하는 비정규직 교수다. 열심히 일을 하고 일상을 살아간다. 시집 발간을 앞두고 있지만 시가 써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살아간다. 요약해보니 아주 우울하지만, 영화는 재미있다.
우울해하는 요즘의 모습과 기운이 넘치던 과거의 모습이 겹쳐서 나온다. 지인과의 대화 장면이 상당히 롱테이크로 나오는데 나름 몰입감 있게 잘 찍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제된 영화 대사는 아니고 그냥 술자리에서 몇번 들었던 것 같은 말투와 추임새로 이루어졌다. 홍상수 느낌?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시를 테마로 했다는 점, 문학과지성사가 나온다는 점이 반가웠다. 그리고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에로스의 종말」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영화 「멜랑콜리아」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대사들도 잠깐 나와서 반가웠다.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감독이 제시하는 방법은 '일상의 회복'이다. 평소처럼 일을 하고 술을 먹고 친구를 만나면서 서서히 주인공 진아는 회복해간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시집을 완성하게 된다.
세월호 유가족에게도, 쌍용차 유가족에게도, 마음이 아픈 사람들만 있으면 달려가는 정혜신 박사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비상 상황이지만 내용을 미리 잘 알아서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면 내 일상을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도 대처가 가능하다. 오히려 그게 더 안전할 수 있다.
_정혜신 「당신이 옳다」
일상적 허기처럼 갈등과 상처들이 찾아오는데 그것들을 내 손으로 해결하는 최소한의 방법을 익히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점점 늪이 되고 지옥이 되어간다. 우울증에 대한 정신의학적 진단은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의 집단 무의식 속에 형성된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치유적 반응의 작동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의학적 진단은 힘도 있지만 동시에 부작용도 있다.
우리 삶의 고통은 정신과의사와 상의해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_정혜신 「당신이 옳다」
남자친구의 불행을 생각하며 '나 때문이야'를 반복하는 진아는 죄책감에 휩싸여 있다. 문병을 가지도 않는다. 정말로 진아의 잘못으로 남자친구가 죽었는지는 모른다. 영화에서 죽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관객을 위한 배려였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영화에서 한강이 나오는 장면에서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죽는 장면이 나올까봐...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을.
그러자 지난 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_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에, 골프를 치고 있었든, 중국에 있었든(나는 그때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마음의 부채는 남았다. 그동안은 그 부채가 얼마나 되는지, 차마 확인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제는 시간이 조금 지났고 영화를 만들고 보는 정도의 여유는 생겼다. 사고를 당한 유가족도, 그리고 지켜봤던 우리도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다. 이제 시를 쓸 차례다.
하늘도 잔뜩 찌푸린 어느 토요일, 오이는 돌연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뭘 해도 신나지 않고, 겁나고, 활력이 생기지 않는 때가 인생에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날 오이는 일터로 나갔지만, 일을 하면서도 통 재미가 없었습니다.
"무슨 일 있어?"
염려가 된 점장이 그렇게 물어올 지경이었습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저, 뭐랄까, 세상이 갑자기 텅 빈 달걀껍질이 돼버린 것만 같아서."
오이가 대답합니다.
달걀은 흰자와 노른자가 있기 때문에 맛있고, 아름답고, 즐거운 것입니다.
"텅 빈 달걀껍질? 뭐야, 그게."
점장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시인일세 그려."하고 말합니다.
시인.
그 때문이었나, 라고 오이는 생각합니다. 이제야 앞뒤가 맞는 것 같습니다. 활기찬 시인은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죠.
'큰일이야. 난, 시인이 되고만 거야.'
_에쿠니 가오리 「호텔 선인장」
여기 남자배우 강길우가 공포영화감독으로 분했던 영화가 있는데, 「시체들의 아침」 이라고. 이거 진짜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