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짓는 자유 누리는 법

[한줄단상] 결:거침에대하여

by 아시시


나를 짓는 자유는 회의하는 자아만이 누릴 수 있다. 나의 사유세계를 반성적으로 들여다보고 좀 더 정확한 진리에 다가서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편견과 오류를 멀리하도록 나의 사유세계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 곧 나의 사유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사유세계의 문은 나의 의지로 열지 않는 한 항상 닫혀 있을 것이다...

- 결:거침에 대하여 중에서 -



살면서 생각을 얼마나 했을까? 사람이 한평생 1/3은 잠을 자는데 소비한다. 나머지 시간에 밥먹고 운동하고 공부하거나 일을 한다. 그 나머지 시간 중, 생각하는데에는 얼마나 소비하고 있을까?

내 생애 마지막으로 ‘생각’을 한 건, 초등학교 시절 개똥철학에서 머물렀다. ‘나는 어디로부터 왔으며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은 어디일까. 인간은 왜 나이를 먹어야 하나?’와 같은 고민을 진지하게 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생각’을 한 기억은 초등 6학년 어느 날이었다. 앞으로 입시가 쉬워진다는 뉴스를 보고(당시에는 뉴스를 잘 봤었다. 뉴스를 보면 항상 부정적인 기사들만 나오길래, 그날을 끝으로 더이상 보지도 관심도 갖지 않고 살았었다.)


‘시험이 점점 쉬워진다는데 그럼 학생들의 실력도 덩달아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내용의 일기를 쓴 적이 있다. 담임 선생님이 잘 쓴 일기라며 칭찬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거기에서 멈췄다. 학교 다니고 공부라는 걸 배우면서부터는 딱히 생각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중학교 입학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본분은 ‘학생’, 그야말로 선생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흡수해서 ‘시험을 잘 치루는데’에 있었다. 그때부터 내겐 생각이란 영역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30년을 더 살다보니 머리도 많이 굳어지고, 생각이 멈춘만큼 어휘력도 거기에서 더이상의 발전이 없었다.



나란 사람이 사고하는 인간답게 살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다. 독서를 시작하면서 나를 더 돌아보고 객관적으로 알려 노력하며 편견과 오류를 멀리하려 애쓰게 되었다. 내 사유세계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생각하는 것이 처음엔 머리 아팠으나 점차 재미를 느꼈으며,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낳는 경험을 했다. 내 안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이를테면 글쓰기가 그렇다.

다른 이의 인생과 삶의 경험이 글로 내 안에 흡수되고, 타인의 경험은 내 안에 고스란히 소화되어 나만의 경험으로 변화된다. 내 언어로, 내 글로 풀어내고 싶어진다. 이를테면, 독서를 시작한 초기 글쓰기는 사실을 기록하는데 그 의의가 있었다. 독서와 독서로 인한 생각이 쌓이고 사유의 문이 열리면서 내 마음은 기록을 넘어서는 중이다. 단순히 ‘잘 쓰고 싶다’라는 차원을 넘어, 어떻게 하면 나만의 언어로 내 마음을, 생각을, 깨달음을 표현해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하는 욕심도 부려보지만 결국, 많이 읽고 쓰고 성찰하는 게 방법이라면 방법일까?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서 기세 등등하게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면, 막상 결과물은 또 그저그런 글이다. 글을 좀 더 읽고 쓰면 더 많이 알고 더 잘 쓸 것 같은데, 읽으면 읽을수록 쓰면 쓸수록 글쓰기가 나와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는 건 그만큼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닐까? 독서와 글쓰기를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등산하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걸었으나 나는 아직도 등산 초입에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등산 장비를 구하려 이 책도, 저 책도 읽고, 문장수집도 하고 있었음을. 내 시선은 정상을 향하고 싶지만, 현실은 산자락 아래라 그 위는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당장 눈 앞에 험난한 산길과 울창한 나무들이 빼곡해 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산을 반드시 올라갈 것임을 다시한번 다짐해본다.



책을 읽다보면 이게 내 생각이었나 싶을 때가 있다. 이 책 저 책 읽고 내용의 출처를 잊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분명 책에서 본 남의 지식이었는데, 습관이 된 독서로 인해 동그마니 내 안에 내 지식인 척 남아있다. 이는 독후감, 리뷰, 서평, 비평 등의 글쓰는 작업을 통해 내 안에 내 언어로 정리될 수 있다.

정리 안 된 부산물로 존재할 수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 같지만 기억이 나는 순간이 있다. 망각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는 내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이 된다. 짧은 인생으로도 삶의 지표가 될 수 있으나 독서를 통한 다른 현인들의 삶의 경험까지 내 안에 농축되어 내 삶은 더 향상된다. 지인 한 두 명의 멘토에서 책 속의 수많은 위인들이 내 멘토가 되니 삶의 질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 살아가는 삶의 형태 역시, 흔들림 없이 명확하다. 현인들의 삶으로 내 안에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를 짓는 자아가 되고 싶다면 사유 세계를 활짝 열어야 한다. 일상에서, 책에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서 ‘왜’라는 궁금증을 갖고 생각해야 한다. 생각을 나타낸 게 게 글이고, 글이 모여 그 사람의 ‘정리된’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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