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이다. 방수진 작가의 <깊은 밤을 건너온 너에게>라는 책을 읽은 게. 책읽기 인증방 책친님의 권유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세 아이의 엄마인 방수진 작가의 책을 읽으며 내게도 어울릴 책이라고 추천하셔서 읽어 보았다. 세 아이 엄마는 세 아이 엄마에게 끌리는 법이다(방수진 작가님은 세 아이의 엄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받아드는 순간 방수진 작가의 그림에 매료되었다. 겉표지부터 속지 중간중간, 방수진 작가의 수채화가 내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기분이었다. .
"안녕하세요? 상호대차 책 찾으러 왔어요."
"성함이.."
책을 건네받고 뒤돌아서려는 나를 사서 선생님이 불렀다.
"혹시, 그림 그려보실래요?"
"그림이요?!!"
도서관에서 갑자기 그림 이야기를 하니 잠시 당황했다.
"이번에 도서관에서 '어반 스케치' 그리기 과정이 6주간 진행되요.이 책을 빌려가는 모습을 보는데, 왠지 어울리실 것 같아서요."
원래 정원이 차 있었는데, 갑자기 빈자리가 생겼다는 게 도서관 직원의 항변이었다. 나도 한 때는 이런 그림을 그렸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초등 고학년 때 학교 대표로 큰 대회에 참여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으며 초등시절을 보낸 내가, 중학생이 되자 실력이 월등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특별히 노력을 하거나 고민할 것 없이. 그게 가계 보탬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만 두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내 진짜 속내를 말하지 않고 '이제 그리기 싫어' 이 한 마디로 그림을 접었다.
그런데 이 책을 손에 받아든 순간, 내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그리고 사서 선생님의 이 '요청'이 내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했다. 사실, 아이 키우며 문득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바쁜 육아기간으로 내 손에 연필이 쥐어질 기회는 오지 않았고, 이후에는 아이들 학원비 걱정으로 그림을 다시 시작해볼 생각을 전혀 못 했다.
30년만에 4B연필을 들고 그린 그림
이 때부터였다. 30년 가까이, 내 인생에 그림은 없을거라 생각했던 기나긴 공백을 거슬러올라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 게. 시간, 경제적 여력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 내게, <깊은 밤을 건너온 너에게>는 나의 삶에 가슴뛰는 기분좋은 봄바람을 살며시 불어넣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