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의 탄생
시험관 시술 중 부부싸움하는 이유.
첫 시술이 시작되었다.
“주사를 오전 10시에 놓으셔야 해요. 주사 놓는 법은...”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고 있었지만 실은 넋이 나가 있었다. 직접 주사를 배에 놓아야 한다니 충격이었다. 심지어 두 어가지 약물을 섞어야 한다니, 앞이 캄캄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시험관 시술’ 관련된 커뮤니티에도 가입해 주사에 대한 글을 읽어 보다 어떤 글에 눈이 번쩍 떠졌다.
‘우리 남편이 주사를 놔줘요.’
세상에! 어떤 남편은 배 주사뿐 아니라 엉덩이 주사까지 놔준다고 했다. (엉덩이 주사는 고난의도라고 한다.)
‘나도 남편에게 부탁해 보겠어!’ (꿈도 야무지다..)
시간이 되자 식탁 위에 약물 병과 주사기들을 펼쳐 놓고 남편을 불렀다.
“남편! 나 주사 약물 섞는 것 좀 도와줘.”
남편은 방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식탁 위에 주사기들을 봤다.
“어휴. 바늘 무서워. 나 뾰족한 것 공포증이야.”
손사래 치며 뒷걸음치는 남편이 밉살스러웠다.
“진짜 밉상이야!”
남편 뒤에 종주먹을 흔들며 소리쳤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약물 섞는 건 처음이라 쉽지 않았다. 자꾸 손에서 땀이 나서 미끄러워서 주사기 바늘 교체할 때 애먹었다.
‘아아아얏!’
바늘에 찔린 손가락에 빨간 피가 맺혔다.
속상한 마음과 짜증이 밀려왔다. 그러자 괜히 남편이 더 얄미워졌다.
“좀 도와주지. 주사까지 놔주는 남편도 있다는데!”
“미안”
방에서 기죽은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약을 섞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사기 바늘을 배에 댔다. 생각보다 아프진 않았지만 긴장해서 그런지 머리까지 아팠다.
숨을 길게 내 쉬며 천천히 주사를 눌렀다.
‘뽁’
“야호! 남편 나 해냈어!!”
방에서 숨죽이며 기다리던 남편도 뛰어나와 만세를 불렀다. 그제야 나는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환하게 웃는 남편도 내심 안심하는 눈치였다. 도와줄 수 없는 그의 심정도 그리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남편이 진짜 주사를 놔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원했던 건 좀 더 호들갑 떨면서 날 걱정해 주는 남편의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압박감과 스트레스받으니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걸까.
평소 나와 다른 내가 낯설었지만 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나는 내가 몰랐던 또 다른 날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나운 ‘헐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