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불리자 나는 벌떡 일어나 진료실 앞으로 갔다. ‘휴’ 호흡을 가다듬고 진료실 문을 열었다. 선생님은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미간을 찌푸리며 모니터를 보고 계셨다. 심각한 모습에 괜히 내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님의 이전 병원 진료 기록을 전부 봤는데 현대의학에서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보셨네요.”
나는 선생님의 첫 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 나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여러 차례 했었고 최신 기법, 약물은 모두 시험해 본 터였다.
“아~ 네. 지난번 병원에서 권하는 건 모두 했어요.”
‘결과는 모두 좋지 않았지만’ 뒷말을 삼키며 선생님의 눈치를 봤다.
혹시 선생님도 날 포기하고 싶으신 걸까?
사실 이전 병원 선생님도 날 포기한 건 아니었다. 몇 년 동안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주셨고 매번 ‘실패’란 결과 앞에서 기운차게 ‘다음’을 기약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랬던 선생님이 마지막 시술 결과 앞에서 처음으로 내게 한숨을 쉬며 힘없이 말씀하셨다.
“아..@@님 현대의학에서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드렸어요.”
선생님의 말씀은 내게, ‘더 이상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없다.’란 말로 들렸고 나는 의사마저도 날 포기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험관 시술에 매번 실패했어도 울어본 적 없었던 나는 처음으로 펑펑 울고 말았다. 매번 결과가 좋지 않았어도 웃으며 다시 도전할 수 있었던 건 ‘희망’ 때문이었는데 그 희망이 절망으로 변해버린 기분이었다.
때마침 내리는 빗물에 내 눈물이 가려져 마음 놓고 울 수 있었다. 옷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한참을 걷다 보니 슬슬 다리가 아팠다. 어느새 눈물은 마르고 비도 그쳤다. 그제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맑게 갠 하늘엔 예쁜 무지개가 떠 있었다.
‘포기하지 마.’
무지개를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름다운 무지개도 하늘도 내게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둡고 비가 쏟아져도 곧 맑은 하늘이 나타나고 운이 좋으면 무지개도 볼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 아니겠는가. '지금은 울고 있지만 나도 곧 웃을 거야.'
내 마음에도 무지개가 떠올랐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나는 그 길로 새로운 병원으로 옮겼다. 새 병원 주치의 선생님은 ‘책 한 권 분량’의 나의 과거 진료 기록을 살펴보다 말씀하셨다.
“현대의학에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셨네요. 그래도 매번 몸의 반응은 다를 수 있어요. 이번엔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의사가 신이 아니란걸. 아무리 의학적으로 뛰어나도 ‘착상은 신의 영역’이라고. 그래도 선생님 말씀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자며 다시 도전할 수 있었던 건 한 줄기 희망때문이었다. 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포기할 수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