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질문이었다. 결혼하자마자 난임 병원을 찾았고 그다음 해부터 시험관 시술을 해 온 내게 이렇게 묻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나조차도 자문해보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아...그냥이요.”
잠시 멈추고 답을 했으나 ‘그냥’이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아이를 원한 건 조카가 태어났을 무렵이었다. 사정이 있어서 백일동안 동생을 도와 조카를 돌봤을 때 가끔 아기를 데리고 집 앞 벤치에서 햇살을 쐬곤 했다. 그때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엄청 예쁜가 보네요. 엄마가 행복해 보여요.”
“아..네 행복하네요.”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저 엄마 아닌데요. 이모인데요.’라고 대답하려 하다 입을 다물었다. 조카가 엄청 예쁜 것도 그 순간 너무 행복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엄마가 아닌 게 대수랴?
아이와 애착 관계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비록 보조 엄마지만 온전히 내가 돌봐야 생존할 수 있는 존재는 버거우면서도 행복했다. 누군가가 날 필요로 하고 쓰인다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란 말이 이런 의미구나! 오롯이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건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그때부터 나도 아이를 갖겠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걸 줄 수 있는 사랑은 짧았으나 강렬하게 남았고 그 감정은 시한부였기에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내가 진짜 부모라면 늘 사랑만 줄 수 있었을까?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생각만 해도 어깨가 무거워지는 일이다. 그저 예뻐만 해주면 아이가 크는 건 아니니까.
나의 아버지는 내가 몇 살인지도 모를 만큼 가족에게 무관심했고 어머니는 먹고살기 바빠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없었다. 그런 부모에 대한 반발심에 나는 우리 부모보다 더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욕망과 나도 결국 우리 부모처럼 될 거란 두려움이 내 마음에 공존했다.
이런 양가적인 감정은 내 삶에서 결혼과 출산을 멀찍이 떨어트려 놓았다.
그랬던 내가 변했다. 아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고 밤잠을 깨우는 울음이 달았다. 아이 똥내도 구수할 지경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라며 고슴도치 필터가 단단히 씌웠다. 조그마한 생명체가 나날이 커가니 신기하고 보람됐다.
몸은 힘들어도 아이 웃음 하나에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교감할 때마다 내 마음에 두려움과 상처가 하나씩 치유되는 듯했다.
백일이 지나자 아이를 데리고 동생은 돌아갔고 나는 밤새 울었다. 그건 내 안에 있던 상처와 두려움이 치유되며 나오는 눈물이었다.
이제는 부모가 자녀에게 늘 자애로울 수만은 없다는 것도 안다. 세상엔 완벽한 부모는 없고 우리 부모님도 세상 사람 중 하나였을 뿐이다. 가끔은 다투거나 서운하기도 하지만 결국 화해하는 그런 관계, 지지고 볶아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