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발레 동작 중에 ‘를르베’(까치발 들기)를 좋아한다. 까치발을 들고 균형을 잡으면 마치 하늘에 날아오르는 기분이 든다. 이 동작을 좋아하기까지는 시행착오와 연습이 필요했다. 보기엔 단순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았다.
를르베는 코어와 허벅지 안쪽에 힘을 단단히 주고, 누군가 골반을 끌어올린다는 느낌으로 서야 한다. 위로 올라가는 힘과 아래로 내려가는 힘을 동시에 느끼며 몸을 길게 펴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갈비뼈는 벌어지지 않게 주의한다.
“바에서 손 떼보세요. 발란스!”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까치발을 들고 조심스레 발레 바에서 손을 떼어 본다.
“어어어!” ‘쾅’
나는 손을 떼면 몇 초 중심 잡는가 이내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처럼 휘청이다 중심을 잃고 만다. 반면 선생님의 를르베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굳건하다.
나는 틈만 나면 선생님의 동작을 관찰해 비법을 알아내려 애썼다. 그러다 한참만에 알게 되었다. 선생님의 발 모양이 나와 다르다는 걸.
“선생님 발 좀 보여 주실 수 있나요?”
“발요?”
“네. 를르베할 때 저랑 발 모양이 달라서요.”
나의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선뜻 맨발로 를르베를 시연해 주셨다. 선생님은 발가락을 부채처럼 쫙 펴고 발등을 끝까지 밀어 올리며 발끝으로 섰다.
“아! 를르베는 발가락으로 서는 거군요.”
나는 그제야 선생님과 나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무의 뿌리가 흙을 움켜쥐듯 발가락이 지면을 단단히 잡고 서야 했던 거다.
나도 있는 힘껏 발가락을 펴려 애썼다. 하지만 이미 굳을 대로 굳은 탓에 발가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르게 서고 걸으려면 엄지발가락과 새끼발가락, 뒤꿈치 세 곳이 균형 있게 무게를 버텨 줘야 한다. 나처럼 발가락이 제 기능을 하지 않으면 발의 아치가 무너지고 골반과 척추에도 악영향을 준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건만, 주인의 관심 밖에서 벗어나 늘 웅크리고만 있었을 나의 발가락, 소중하지만 감사한 줄 몰랐던 나의 발에게 새삼 미안해졌다.
근래에 내 발가락 같은 존재에 관해 생각했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 엄마는 우리 세 자매를 위해 하루에 9개의 도시락을 쌌다. 동대문 의류 시장에서 밤새워 일하고, 새벽에야 퇴근한 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 반찬에 도시락을 싸주었다. 나는 그런 노고를 당연히 여긴 건 물론, 지친 엄마에게 종종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엄마의 도시락 노동은 우리가 대학생, 직장인이 되어서도 계속 되었고, 막냇동생이 결혼하고서야 겨우 끝이 났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은 우리 자매들의 일상을 지탱해주던 발가락 같은 것이었다.
"발가락을 되찾으셔야 해요."
선생님이 말했을 때, 나는 선뜻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있는 발가락을 되찾으라니...?'
"발가락을 되찾아야 걸을 때도 바르게 걸을 수 있답니다."
'아! 늘 그자리에 있지만 제대로 쓰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몰랐던 발가락을 의식하라는 뜻이구나.'
그날 이후, 선생님의 당부처럼 나는 발가락을 의식하며 산다. 그리고 무심히 지나쳤던 감사한 것들을 발견하고, 고맙다는 말도 전한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 중에 감사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놀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