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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라의 일기장 Feb 09. 2023

이 나이에 무슨?

중년에 춤을 배우기 시작하다.

   

결혼 후,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반복하고 나니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결과는 늘 엇비슷했다. ‘미안합니다. 이번엔 안 되었어요.’ 실패가 반복되면서 내 마음도 움츠러들었다. 체중은 야금야금 늘어났고 자신감은 슬금슬금 줄어들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도 모르게 입버릇처럼 ‘나이 탓’을 하기 시작했다.      

“내 이에 무슨"

자조적인 말이었지만, 나이 탓을 하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나이 먹었으니까 안 되는게 당연하지!'


 무기력해질수록 나는 나이 탓을 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하지만 잠깐의 위로는 헛헛함까지 달래주진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은 더 작아져만 갔다. 말이 씨가 된다지 않는가. 반복되는 말은 내 무의식에 자리 잡아 내 삶도 변화시켰다.     


시험관 시술을 핑계로 일도 그만둔 터라 별다른 만남도 없었다. 온종일 책을 읽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책을 읽다가 지치면 잠시 잠들었다 다시 읽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계절이 바뀌고, 하루는 집 앞 한강 공원을 산책하는 중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노란 꽃이 줄지어 피어있었다.


'이 겨울에 개나리가 핀 거야?'

얼른 다가가 살피니 앙상한 가지 사이로 노란 개나리가 얼굴을 내민 채였다.


내 눈을 의심했지만 분명 노란 개나리꽃이었다. 겨울인데 개나리가 핀다고?  계절을 착각해 꽃을 피운 개나리를 딱한 눈으로 쳐다보다 나는 문득 한숨을 뱉었다.     

'때를 맞추지 못하는 건...나랑 똑같네!'     


‘40대라 확률이 낮아요.’ ‘40대니까 아무래도 배아 질이 좋지 않죠.’ 병원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내 나이와 늦은 결혼을 탓했다.     

겨울에 피어버린 개나리처럼 때를 못 맞췄다고, 그래서 좋은 기회를 영영 놓쳐 버렸다고 한탄했다.     


문득 나태주 시인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한 대목이 떠올랐다.     


‘화양연화’

꽃처럼 화려하고 아름답던 날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을 거야.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에게 좋은 시절이 왔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 시절을 보내버린다는 거야. 지나고 나서야 아, 그때가 나에게 좋은 시절이었구나, 후회하게 돼.     


'어쩌면 지금이 나의 화양연화일지 몰라...개나리도 마찬가지일 수도...'


개나리는 바뀐 날씨에 적응해 꽃 피울 시기를 영민하게 바꾼 걸지도 모른다. 자신의 화양연화를 스스로 선택하고,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순식간에 개나리가 기특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나이에 무슨'이라는 말 대신, '지금이 나의 화양연화다'라고 되뇌기로 했다.     


‘지금이 내 인생에 꽃 시절이야.’

말이 바뀌자 마음도 바뀌고 삶도 조금씩 달라졌다. 그리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소망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춤을 배워야지! 춤은 분명 나의 화양연화를 더 찬란하게 만들어줄거야.     


개나리를 바라보는 눈을 바꾸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여전히 '나이 탓'만 하며 우울한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중년에 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이 탓’만 했다면 이 나이에 배울 줄 누가 알았을까.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무용실 거울 앞에 섰다. 개나리처럼 환한 웃음이 내 얼굴을 채웠다.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고, 때를 놓쳤다고 절망할 필요 없다. 오늘은 당신과 나의 화양연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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