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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Sep 18. 2024

나와 우연이 반반씩 기여한 행운

2장 - 우연과 인연이 스민 거울 앞으로


 살다 보면 마주치는 행운. 그건 내가 잘해서 찾아오는 것도, 가만히 기다린다고 해서 저절로 오는 것도 아니다. 생각해 보면 행운은 불행과 등을 맞대고 있다가 우연을 가장하고 찾아오는 게 아닐까 싶다.

 런던 외곽에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어느 아프리카계 영국인 주부의 작업실을 한 주에 절반씩 요일을 나눠 쓰다가,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아 짐을 빼던 날.

겨울 반절에 봄 한 마디를 더한 시간 동안 쌓인 작업과 잡동사니들을 한데 묶으니 양손과 어깨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버스의 종점인 노스그리니치 역에 내리는데, 뒤에서 한 여자가 불쑥 말을 꺼냈다.

 “손에 든 게 네 그림이니? 뒷자리에서 보고 있었는데 아주 인상적이라고 생각했어. 행운을 빌어!”  

너무 커서 묶지 못하고 한 손에 따로 들고 있던 그림을 말하는 것이었다. 대답을 바라지 않고 유유히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은, 이날 종일토록 펼쳐진 알 수 없는 위로의 예고편이었다.

 위로는 타인의 말 한마디에도, 무언의 행동에도, 생각지 못한 우연에도 깃들어 있다.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환승역에서는 몇 번이나 덩치가 좋은 흑인들이 웃으며 짐을 번쩍 들어다 주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갑갑한 런던 지하철을 빠져나와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온몸에 힘이 빠짐은 물론 헐거워진 노끈 틈새로 의자며 그림들이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버려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와줄까요?”

 때마침, 퇴근길인 듯한 아저씨가 선뜻 도움을 자청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한 블록 건너편에 산다고 했다. 이름은 요한. 영국계 이름은 아닌 듯했다. 고마움에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홈페이지가 적힌 명함을 건넨 뒤 헤어졌다. 짐을 보면 작가인 것을 알 테니 나중에 궁금해지면 둘러보시라는 뜻에서였다. 이만치도 내겐 온종일이 과분한 위로였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모든 위로에 마침표를 찍는 메일이 날아왔다. 요한이었다. 그림을 주문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 특정한 요구사항 없이 자유롭게 그려 주기를 원했다. 알고 보니, 그는 IT업계에 종사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수입의 일정 부분은 늘 예술품을 구입하는 컬렉터였다. 아마추어 화가인 이모님의 영향이 큰 모양이었다. 가족은 남아공에 있고, 이름은 아주 오래전에 남아공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선조들의 흔적이라고.

 요한이 미리 조달해 준 재료로 작품 두 점을 그리면서 나는 얼마간의 집세를 해결하였고, 유럽을 홀로 여행 중이던 여고 동창과 시기를 맞추어 호사스럽게도 한 주 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나와 우연이 반반씩 기여한 행운 덕분에 위로가 끼어들 틈 없는 즐거운 한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봄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내가 내 몫을 다하며 계속 나아가는 한, 그 봄은 언제나 다시 돌아온다는 것 또한.

 안 될 것 같은 이유만 한가득 눈에 보일 때는 잠시 무거운 짐을 풀어놓고 숨을 고르며 우연이 나에게 닿을 틈을 내어주도록 하자. 우연도 그의 몫을 다 하러 바삐 오는 중일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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