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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가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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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Dec 24. 2020

2008-2011 그림에도 인연은 존재한다.

12년 묵은 작가 노트


생각해보면 이곳저곳을 떠돌며 그림을 꽤 많이도 팔았는데, 호기롭게도 생면부지의 타국 사람들과 면을 트고 담소를 나누고 슥슥 그려낸 그림을 내어주고 그들의 사정에 따라 사례를 받았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사연들은 '미완의 에세이'에서 일부 언급하기도 했다.


https://brunch.co.kr/@joyjo/5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림에도 인연이라는 것이 있어서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항상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의뢰한 사람에게 반드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낙타를 그려달라던 그 사람에게 결국 갈 수 없었던 이 낙타들처럼.


camels in desert _ink on paper_27×39cm_2008


한 번은 기획을 다 해놓았는데 국제 배송 일정에 차질이 생겨 작품이 전시장에 아예 못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그 덕에 이미 런던 콜렉터에게 소장되어 바깥에서는 더 이상 빛을 볼 일이 없는 그림들이 잠시 외출을 하기도 했다. 작가인 나도 갑작스레 연출된 이 마지막 재회를 전혀 예상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2011년 런던 옥소타워에서 치러졌던 단체전, '4482'


항구와 탄생에 관한 그림들이 템즈 강변에 위치한 이 전시장의 분위기와 당연히 더 잘 어울릴 것이었는데, 일이 틀어질 때까지는 이 그림을 걸게 될 줄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되돌아보면 어느 절망적인 날 런던 주택가에서 마주쳤던 콜렉터와의 인연도 설명하기 힘든 우연이었다. 이 이야기 역시 미완의 에세이에서 다루기는 하였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림과 함께 다시금 떼어 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역병으로 세계가 우울에 빠져 있는 지금,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그 사람들은 건강히 지내고 있을까. 그들의 공간 속에서 언제나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을 이 그림들이, 매일매일 슬픔을 이겨낼 만큼의 작은 생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기를 소원한다.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던 음습한 카타콤에서도 희망의 닻은 줄기차게 새겨지지 않았던가.



The Anchor of Hope_Acrylic on canvas_91.4×61cm_2011


이태리에서 받은 것들의 조합. 바티칸에서는 금빛을, 카타콤에서는 닻을, 피렌체에서는 분홍빛을 그리고 베니스에서는 들이치는 파도와 초록 물빛을... 닻을 상징하는 그림이 카타콤 벽면에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끝끝내는 천국의  항구에 닿고자 했던 사람들의 희망에서 나온 그림이었다. 그것이,  마음을 그렇게도 울렸다.

A combination of inspirations I received from Italy road trip 2011. Gold from the Vatican, anchor from the catacombs in Rome, pink from Florence, waves and turquoise from Venice... The anchor graved on the wall of Catacombe was a thread of hope. And it blew my mind.

2011.7.1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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