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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빛사냥 Dec 13. 2021

[아들생활탐구보고서] - ③ 게임과 유튜브

실버 버튼은 아무나 주나.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1년을 기다린 인생 최대의 명절. 어린이날.

1호와 2호는 새벽 5시 알람을 맞춰두고 잤더랜다.

지들이 일어나겠어. 알람은 결국 내가 끄게 될 테니 번거롭지만 한 번 일어나 꺼야지..라고 생각한 건 큰 오산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5시에 일어났다!


어린이날의 기적? 은 1년 전 했던 약속 때문이었다.

"엄마, 어린이날은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는 거죠?"

"음. 할 수 있는 거면."

"우리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는 거죠?"

"그래. 뭔데?"

"24시간 게임하는 거!!"

뭐, 까짓. 그날 다른 일정 잡으면 되고, 1년 뒤면 까먹을 텐데 벌써부터 약속이야. 기꺼이 그러 마하고 약속했다. 내가.


5시. 용수철처럼 일어난 그들은 곧바로 밤새 충전한 핸드폰 앞으로가 두 손, 두 발 모으고 게임 신을 영접했다. 등교 전 아침마다 비몽사몽 하던 아이들이 아니었다. 오후 5시 마냥 멀쩡하게 각성된 상태. 1호와 2호는 곧바로 집중모드로 들어갔고 나름 눈 건강을 위해 50분 게임하고 5분 쉬었다를 반복했다. 게임 3교시가 끝났을 때 조식을 넣어주는 센스.

띠리리~ 띠리리~

아침을 마치고 TV타임을 즐길 때 친구네 전화가 왔다. 놀이터 접선 문의. 1,2호가 서로 눈빛으로 망설이길래 내가 나서서 재빨리 대답했다.

Yes, let's go!


10시. 6명의 어린이들이 모였다. 술래잡기, 종이비행기 날리기, 축구, 피구, 농구를 거쳐 한바탕 웃어 제끼고 놀다가 갑자기 나에게 왔다.

"게임해도 돼요?"

"아니, 지금 친구들이랑 놀고 있잖아."

씩씩하게 뒤돌아 가서 논다.

"게임해도 돼요?"

"간식 먹을래?"

간식을 우걱우걱 먹고 또 놀러 나간다.

"게임해도 돼요?"

"여기는 와이파이가 안 되네?"


어느덧 한창 뜨거워지는 2시가 되었고 가볍게 근처 국숫집 가서 배를 채우고 다시 놀이터로 왔다. 또다시 시작된 술래잡기, 종이비행기 날리기, 축구, 피구, 농구의 시간표가 돌아가고, 놀이터 탈출 게임이 추가되었다.

한 바퀴 순환이 끝날 즈음 쪼르르 한 녀석이 물어보러 온다.

"게임해도 돼요?"

"해지면 놀 시간도 없어. 게임은 이따 해도 되잖아."

터벅터벅 발걸음이 무겁게 돌아간다.

"집에 가도 돼요?"

"친구들 아직 있는데? 어, 친구들 장소 이동하나 봐, 어서 가바."

얼결에 후다닥 달려간다.

시간이 흐르며 놀이터에 합류하는 친구들은 계속 바뀌었지만 1,2호는 붙박이로 놀고 있었다.

6시 30분. 이제 마지막 친구가 인사하고 갔다.

"우리도 집에 갈 수 있어요?"

"그래, 이제 가자!!"

"드디어 집에 간다. 형아! 어서 가서 게임하자!!"


따뜻한 물에 30분을 몸을 녹인 아이들에게 치킨을 쏴주었고, 먹는 속도가 점점 느려진 2호는 결국 다 먹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8시. K.O

혼자 남은 1호는 짝 잃은 오리마냥 빙글빙글 방황하다 2호 곁으로. 9시. K.O

2021년 광란의 어린이날이 마무리되는 순간.

이 정도면 선방했어, 훗


며칠 후 2호가 묻는다.

"근데, 엄마가 우리 게임 못하게 하려고 계속 밖에서 논거야?"

"설마요~ 그럴 리가. 엄청 잘 놀았잖아~"

"왠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서."

"오, 노노노. 엄마는 너희가 아주 멋진 어린이날을 보내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데."

히죽 올라가는 입꼬리를 잡느라 힘들었던 건 영원히 비밀.

"크리스마스 때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아니요~ 그날은 모두의 날인데 너희 맘대로 하는 건 공평하지 않지."


간혹. 날카로운 질문을 찌르는 2호는 요즘 유튜브를 시작했다.

어느 날 우연히, 스마트폰의 화면 녹화 기능을 알고 나서 2호는 환호성을 지르며 날아다녔다.

"엄마! 나 이제 게임방송을 할 거야!"

1호와 둘이 한참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채널 이름을 정하고 하루 10분 주어지는 게임시간을 온전히 녹화해서 드디어 업로드를 했다!

"엄마!! 드디어 나 유투버가 되었어. 어서 구독해줘~"

"와! 축하해!! 좋아요도 눌러줄게!"

"얏호! 난 실버 버튼도 받아야지~이제 시작이야!"

셋이 다닥다닥 모여 방금 올린 따끈한 첫 영상을 플레이했다.

"음.. 2호야~이건 너가 게임하는 거랑 달라, 게임방송을 하는 거니까 이 게임이 어떤 건지 설명을 하고, 배틀에서 이기려면 어떤 전략을 써야 하는지 말을 해줘야지. 그냥 아무 말도 없이 배틀에 집중하면 처음 보는 사람은 재미가 없어. 이 공룡의 이름은 뭔지, 어떤 공격포인트가 있는지 상대편은 누구고, 약점이 뭔지 이런 거 있잖아~ 너네 게임 유튜브도 봤지? 계속 상황에 대해 설명해줘야 해. 이건 게임하는 거랑 다른 거야. 이바 이바, 막 이렇게 클릭해버리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뭐가 뭔지 몰라. 구독자는 재미없어해."


공기가 달라져있었다. 2호는 말이 없어졌고, 나에게서 좀 떨어졌다. 2호와 나 사이를 오가는 차가운 공기를 1호도 느꼈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2호야, 내일 또 하면 돼~"

2호는 말없이 핸드폰을 들고 방으로 갔다.

'아니, 실버 버튼 받고 싶다며. 그럼 이런 쓴소리 정도는 들어야 하는 거 아냐~이래서 무슨 유투버를 하겠다고! 세상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참 조언을 해주는 첫 번째 구독자에게 고마워해야지, 배가 불렀군 불렀어.'

속사포랩을 겨우 삼키고,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 2호의 유튜브 개설 소식을 알리고 구독을 간청했다.


며칠 뒤, 2호가 두 팔 벌리며 날아왔다.

"엄마! 나 구독자가 7명이 됐어. 처음 올린 건 조회 수가 15야, 와하하하하하!"

"우와~ 축하해!"

"드디어, 나의 꿈이 이루어진 건가. 형아! 내 실버 버튼은 언제 올까?"

업로드에 진심인 2호는 차곡차곡 게임을 기록해갔고, 긴 영상은 올라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구독자와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영상편집을 익혔다.

주말에는 깨우지 않아도 7시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잠긴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라기 월드입니다. 오늘 전투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멘트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제는 게임 설명도 친절하게 해 주고 제법 전문 게임 유투버 같아졌어, 2호! 와, 구독자가 이제 9명이 됐네? 점점 성장하는구나, 축하해~"

쑥스러움 반, 으쓱함 반. 2호의 어깨는 춤을 춘다.


사실 처음과 달라진 건 없다. 혼자 게임에 심취해 묵묵히 배틀을 끝내고 이기면 혼자 흥분해서 중계를 하는 정도? 다만, 이제 빈 오디오를 지적하지 않는다. 가끔 구독자에게 건네는 멘트에 대해 칭찬하고 넘어가면 2호도 좋고, 나도 머쓱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을 뿐.


잠깐... 가만 보자.

영상만 보다가 어느 날, 영상에 대한 상세 설명란을 보게 되었다.


재 상태는 고수도 못 깸니다
캐시를 과하개 쓰지마새요
나 전설을 었을수있었는데
어재는 감기걸려서 안울려서 죄송합니다


이 날것의 맞춤법 어쩔. 2호가 7살 때 몇 장 시도하다 때려친 기적의 받아쓰기 책이 구석 어딘가 있을 텐데, 지금 절실하다. 유투버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산, 받아쓰기.

그래, 2호야. 이게 인생이야.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니 늘 이것저것 준비를 해야 된다고 엄마가 말했어, 안 했어! 그때 한글 공부 안 하겠다고 짜증 부려서 지금 구독자 9명에게 맞춤법 혼란을 줘서야 되겠니. 그리고, 말 나온 김에 한마디 하자. 게임방송인데 왜 곤충 찾기를 올리는 거야. 그거 찍는다고 밤에 돌아다니다가 감기 걸려서 일주일 고생했잖아. 자고로 어른들 말은 들어서 나쁠 건 없다니까!


우연히 2호의 영상 목록을 보다 문제의 곤충 찾기 영상 설명란을 봤다.

난 가끔 게임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 2호도 2호의 인생이 있지... 1년 365일 게임에만 빠져 있는 건 아니었구나. 그래, 고맙다, 2호!

고 싶은 말은 지만 하겠다.

오늘도 열혈 구독자로서 조회 수 1과 좋아요 1을 기록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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