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약이길.
틱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기관에 검사를 받아 볼 생각도 전혀 못했기에 틱이야 말로 저세상 일이라 생각했었다. 내기준의 틱은, 아이가 심한 강박에 시달린다거나 오은영 박사님을 찾아가야 할 정도의 통제 불능은 되야 '틱'이라 부를 수 있지 .. 라고 생각했었던 것같다. 그 아래 수위는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라는 용감무쌍하면서도 안일한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1호가 일곱 살. 초등 학교 입학을 준비하며 문제집이라도 좀 풀어보자,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색칠하고, 오리고 붙이고 줄긋기 정도의 간단한 7세용 문제집이었지만 1호는 은근 시간을 필요로 했다. 나름 머리를 쓰는 건지 머리를 긁적이기도 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도 보여 그저 대견하고 기특했다. 그 즈음 유치원 선생님과 2학기 상담을 했다.
"이런 표현이 맞을까 잘 모르겠는데요, 1호가 가끔 활동시간에 멍을 때리고 있어서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한번씩 환기 시켜주고 있어요."
멍을 때린다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건가? 딴 생각을 하는건가? 무슨 생각?
그 뒤로 1호를 예민하게 관찰할 수 밖에 없었고, 잠시 공상인지 멍인지 모를 행동의 멈춤이 오면 나부터 여유를 가지려 애를 썼다. 침착하자. 이게 뭐 큰 일도 아니고.
그러나 남편의 레이다망에 걸린 건 멍 때리는 것 이상이었다.
"1호야! 머리에서 손을 떼! 이게 뭐야, 뒷머리가 다 꼬였자나, 이거 풀을수도 없어. 다 잘라내야해!"
얄팍한 7세용 문제집을 풀며 그저 생각에 잠겨 고민하느라 머리쓰려니 하고 넘겼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머리뭉침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 끌을 빙빙돌려 대며 오랜시간 뭉개고 꼬고 그랬는지 곱슬 머리수준을 넘어 엉키고 설켜있었기에 결국 잘라내고야 말았다.
어느 새 습관처럼 굳어진 머리꼬기는 TV볼때도, 책을 읽어줄때도, 밥을 먹을때도, 급기야 축구 시합을 하는 중에도 이어졌다. 숱한 잔소리와 온집안 어른들의 감시 카메라 속에서 1호는 스스로 자제하려 애를 썼고, 머리꼬기 차선책으로 귀볼 만지기가 시작되었다.
차마 머리카락까지 가지 못하고 귓볼에 멈춘 손.
귓볼이 빨개지도록 만지는 손을 또 나무라고 말았다.
그때는 몰랐으니까. 마음의 불안함을 그렇게라도 달래고 싶었던 1호의 마음이 눈에 보일리 없었고, 그저 내 눈에 거슬리는 문제행동으로만 보였으니까.
초등학교에 입학 후 1학년에도 손은 수시로 올라갔고, 어허! 주의를 주는 소리에 아이 손은 움추러 들었다.
입학 후 일주일 뒤 학부모 총회 날. 긴장된 마음을 안고 학교에 갔다. 담임 선생님께서 경력도 많으시고 상세하게 설명해주셔서 안도하며 교실을 떠나려다가, 엄마들 몇이 남아 선생님께 아이에 대한 질문을 하길래 나도 아쉬운 마음에 가볍게 질문했다.
"1호가 밥을 좀 늦게 먹는데 학교에서는 어떤가요?"
"아, 1호요. 밥도 밥이지만 수업시간에 멍을 때려서 제가 종종 깨우고 있습니다."
그간 머리카락과 귓볼에 신경을 쓰는 사이 잊고 있던 멍때림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나도 그간 멍때리고 있었는지, 선생님의 한마디에 퍼득 정신이 돌아온 느낌이었다. 1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봐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1호야,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1호가 가끔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거 같다고 하던데 혹시 수업 시간에 뭐 생각하는거 있었어?"
"음...음...음..."
"괜찮아~ 얘기해바. 엄마가 궁금해서 그래. 1호 무슨 생각하는지."
"우주에 롤러 코스터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어."
"......아, 롤러코스터...아, 그렇구나. 갑자기? 그래~ 재밌는 생각이었네. 그래도 수업시간엔 선생님 말에 집중하는걸 우선으로 하자. 할 수 있지?"
"응!"
아이의 대답은 명쾌하게 했지만 내 믿음은 작았고, 불안한 마음은 여전했다.
그러다 몇 달 후 그 일이 일어났다.
돌봄교실에서 하교후 집으로 오는 길에 1호가 아침에 엘레베이터가 고장났었다고 말해주었다. 너무 놀라 다시 물었다. 아침에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분명 1층은 눌러져 있고 엘레베이터는 꿈쩍도 안해서 비상벨을 눌렀으나 치익치익 기계음 소리만 들리고 응답이 없었다. 따로 핸드폰이 없던 1호는 고민하다가 3층을 눌러보았다. 그제서야 엘레베이터는 내려갔고 3층에서 멈추었다. 1호는 3층에서 내려서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나가 학교에 갔다고 했다. 그 몇 분간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엘레베이터는 정상적으로 운행중이었고 다른 안내도 없어서 1호를 다시 안심시켜주고, 침착하게 잘했다고 칭찬해주며 집으로 왔다. 저녁에 남편에게 1호의 일을 이야기 해주자 남편은 1호를 꼭 안아주며, 정말 무서웠겠다고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1호는 그간 눌러왔던 공포감이 다시 생각났는지 꺼이꺼이 울며 대성통곡을 했다.
그리고는 정확히 그 날 이후 엘레베이터를 무서워한다.
사실, 그 날 엘레베이터 작동은 정상적이었다. 다만 1층 라이트가 고장나서 불이 안꺼진게 문제였다.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1호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아무 버튼도 안눌렀기에 엘레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고 이후에 3층을 누르니 3층에 데려다 준 것 뿐. 얄미운 건 1층 버튼인셈이다. 이후에 라이트 교체를 해서, 지금도 1층 버튼의 라이트가 살짝 진한 주황빛을 띄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4년간, 1호는 엘레베이터가 무서워 28층 집까지 계단으로 오가기도 하고, 엘레베이터 공포를 없애보자!하고 나와 함께 10번씩 1층과 28층을 오가는 연습도 해보고, 혼자 타고 도전하다가 결국 중간에 내려 게단을 택하는 날도 있고,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러워 계단에서 울면서 전화가 오기도 한다. 모든 불안과 공포가 엘레베이터로 집약이 된 걸 어쩌리. 엘레베이터 원리도 알아보고, 엘레베이터 점검 주기와 안전성에 대해 알려주고, 세계의 엘레베이터 종류까지 보여주며 실체를 파악해보려 했지만 1호도 알고 나도 안다.
엘레베이터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걸. '혹시 모를'이라는 꼬리표 처럼 따라 붙는 불안한 마음과 그 마음이 만들어 내는 최악의 상황이 무서운 것이다. 불안지수가 높은 1호의 바램대로 우리가 1층 집으로 이사가면 1호의 불안함은 없어지게 될까?
누구나 불안함을 안고 살아간다.
불안감을 숨기지 말고 표출해 주었으면 좋겠다.
머리카락을 꼬든, 귓볼을 만지든, 엘레베이터가 무섭다는 등의 표현을 해주길 바란다.
'아, 지금 너가 불안한게 있구나, 어디가 불안했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 같이 해볼까.'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그래서 불안함을 없애지는 못해도 불안함의 강도는 줄일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1호는 늘 엘레베이터를 타면 전화를 한다. 엘레베이터 밖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혼자 남겨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 벌기 위해.
왜이렇게 남자애가 겁이 많냐고, 그 옛날 엘레베이터 버튼 고장 가지고 아직도 그러냐고, 별거 아닌거 갖고 그러지 좀 말라고 하는 대신에 아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불안의 씨가 엘레베이터로 표현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의사 진단은 없지만 큰 의미에서 틱이라고 생각하며 1호의 마음을 받아주기로 하니 내 마음도 편하다. 지금 당장 극복이 힘들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마음을 달래가며 하면 되니까. 이렇게 무섭다고 표현해주는 게 감사하다. 28층까지 엘레베이터를 타는 동안 매일 그만큼의 대화도 나눌 수 있으니까.
이런 형의 모습을 보고 2호가 놓칠리 없다.
6살때부터 혼자 엘레베이터를 타고 본인의 씩씩함을 자랑하던 2호가 어느 날 전략을 바꿔서 본인도 엘레베이터가 무섭다고. 혼자 타기 싫다고 땡강 부리던 시기가 아주 잠깐 있었다. 온 가족이 형을 위해주는 모습에 샘이 났던게지. 그러나 서툴게 시작한 불안 연기는 금방 싫증이 났고, 굼뜨게 준비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던 2호는 한참이나 양보했다는 말투로 홀로 시승 선언을 했다.
물론, 1호 없을 때 성대한? 칭찬과 세러모니를 곁들여.
입이 참 가볍다는 단점만 없으면 2호도 아주 든든하고 고마운 아들이다.
외출이 잦았던 12월, 1호와의 통화 시간이 벌써 2시간을 넘은 거 같다.
늘어난 통화시간 만큼 우린 더 가까워지는 걸로.
괜찮아, 핸드폰 요금은 아빠카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