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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Mar 29. 2019

흔들리지 않아도 되는 풍경

더 이상 흔들리 않아도 되는 문장으로 한 장의 풍경 속에 남겨진 것이다.

 오늘 같은 날은, 이불 빨래처럼 걸리고 싶다. 온종일 발가벗겨져 햇볕에 그을리고 싶다. 찌든 이불을 욕실에 담그고 시커먼 구정물을 토해놓을 때까지 질겅질겅 밟는다. 이불을 밟으면서 무엇인가를 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섯 식구가 한 방에서 부대끼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옷도 형제끼리 서로 물려 입고, 잠이 들 때까지 숨소리도 감출 수 없던 방에서 밤새 우리는 한 이불을 덮고 살았다. 누구의 체취가 찌든 것인지 캐물을 이유가 없었다. 옷을 갈아입을 때가 제일 난감했던 것 같다. 감출 수도 없어서 적당하게 뒤돌아서서 부끄러움을 갈아입는 기술만 늘었을 것이다. 물에 헹구고 이불을 털어서 빨랫줄에 널면 빨랫비누 냄새가 난다. 


 생각이 복잡해질 때는 걷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다. 훌훌 생각을 벗어버리고 싶다. 나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누구의 감정이 더 열악한 조건에서 소모되고 있는지에 대한 셈법이 필요한 나이가 된 것일까. 어느덧,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는 논쟁이 얼마나 부끄러울 수 있는 것인지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속물처럼 찌들어가는 나를 빨래하듯 길 위로 풀어버리는 것이다. 몸이 흠뻑 젖을 만큼 빨리 걷는다. 생각을 어찌할 수 없어서 몸을 혹사시킨다. 속수무책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 속으로 점점 느려지고 있는 나를 떠민다. 천박한 나의 생각들을 밟고 또 밟으면서 강박처럼 같은 길을 걷는다. 그렇게 나를 길 위에 널어놓으면 조금씩 보이는 것들이 있다. 속도를 늦추고 나에게 묻는다.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 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에서, 세상은 뒤채이며 무너져갔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일휘소탕 혈염산하, 一揮掃蕩 血染山河,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 나오는 문장과 이순신 장군의 검명이다. 나에게도 칼이 있다면 나의 칼의 이름은 무엇일까. 나는 잘 막아내고 있고 잘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일까. 나의 칼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칼로 베어졌던 것들과 베어지지 않던 것들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이 있다. 기를 쓰고 막아냈고, 헤쳐 나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 잘한 것일까. 때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것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 생각할 때가 있다. 나의 글에게 이름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의 걷기에 대한 이름을 짓는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이름을 지어야 할까. 


 걷다 보면 쉬었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아마도 풍경이 머무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장소에는 어김없이 의자들이 있다. 의자마다 동판에 새겨진 글귀가 있다. 이 땅에서 사라지고 없는 누군가의 사연을 새겨놓았다. 수없이 흔들렸을 사연들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아도 되는 문장으로 한 장의 풍경 속에 남겨진 것이다. 나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나에게 질문하는 글이 있다. 부드럽게 나의 머리칼을 쓰다듬듯이 봇물처럼 적당히 조절하고 있던 나를 끄집어내게 한다. 천박한 나를 끌어안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준다. 흔들려도 괜찮다고, 주문처럼 나에게 어울리는 말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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