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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Mar 30. 2019

그래, 꽃을 보듯 나를 보자

꽃들은 모두 독보적 존재이다. 모든 꽃은 겨울을 뚫고 나온 것이다.

 옷을 갈아입고 한참 동안 핸드폰을 찾아 집 안을 헤맸다. 그렇게 헤매다가 습관적으로 바지 주머니 속에서 잡히는 익숙한 감촉에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고, 살살 나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는 온종일 다음 홈페이지의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았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을 매일 들여다보고 살았던 내 이메일의 비밀번호가 갑자기 맞지가 않다니. 그 부분의 기억만 증발한 것처럼 끄집어낼 수가 없었다. 결국 카카오톡 로그인으로 들어가서 비밀번호를 바꾸고 나서야 돌아온 기억처럼 비밀번호가 생각났다. 나이가 들면서 내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다. 꼭 붙들고 있는 건지 문득 확인하고 있는 나를 본다. 무엇 하나라도 잃어버린 날에는 너무 상실감이 크다. 잃어버렸다는 것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잃어버린 나에 대한 자책이다. 그다음에는 나에게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게 될 것이다. 


 걷다 보면 길 위에 떨어진 물건들이 있다.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흘리고 다닌다. 너무 많은 것을 주워 담기 때문에 하나쯤 흘려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이틀을 망설였다.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인데도 신경이 쓰인다. 색깔 때문이었을까. 길가에 떨어져 있는 빨간 덮개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앙증맞다. 생김새로 보아 우산이나 양산의 덮개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워서 세우고, 그 위에 덮개를 사람들의 눈에 띄도록 걸었다. 한 송이 빨간 꽃이 피었다.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소중했을, 마음 한쪽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소중하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한때는 애끓는 심정이었기에 소중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잃어버려도 그냥 살 수 있고, 잊고도 그냥 담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생명처럼 단 하나로 붙잡아야만 하는 나와 우리에 대한 믿음이다. 


 다른 꽃보다 더 빨리 벚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는 나무들이 있다. 햇빛과 하늘의 아슬아슬한 대비, 그 속에 차려진 순백의 꽃대궐. 오늘도 충동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나의 기억은 너무 서정적이다. 나의 감정의 기복에 따라 너무 낯선 풍경들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믿고 꺼낼 수 있는 서사를 찍는 것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담으려면 몸을 낮춰야 한다. 우러러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올려다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하늘을 보듯 꽃을 보는 것이다. 나무가 선천적으로 잘났다거나 꽃을 피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심긴 나무이다. 햇빛과 바람과 비와 그리고 너에게 빠진 나를 위해 허락된 짧은 날의 서사가 되는 서정의 순간이다. 꽃을 피우는 바람에 찬란하게 나부끼는 풍경을 들여다본다. 꽃비라도 뿌려지는 날에는 세상이 전부 꽃으로 보일 것이다. 꽃잎 하나하나를 들쳐본다. 같은 모양, 같은 크기, 같은 색깔의 꽃은 단 하나도 없다. 제각각의 다른 표정으로 흔들리고 있는 황홀한 대면이었다. 


 꽃은 모두 독보적 존재이다. 모든 꽃은 겨울을 뚫고 나온 것이다. 꽃은 모두 흔들리면서 핀다. 하루에도 몇 번을 언제 꽃잎을 열고 닫아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때로는 길을 벗어나 풀밭으로 성큼 들어갈 때가 있다. 꽃 한 송이가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세상이 전부 들꽃처럼 보인다. 무엇인가에 대해 표현하려면 더욱더 그렇다. 여기, 상처 입은 한 영혼이 있다. 아무렇게나 밟아도 되는 풀은 없다. 함부로 꺾어도 되는 꽃은 없다. 상처 입은 영혼에게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모두가 소중하다. 빨리 핀 꽃은 빨리 지는 법이다. 늦게 피는 꽃은 꽃이 아니더냐. 그래, 꽃을 보듯 나를 보자. 오늘은 나를 위해 드립커피를 내린다. 나를 데우는 적당한 온도를 나에게 선물하자. 치즈케이크 한 조각에 담긴 달콤함에 젖는다. 꽃을 보듯 나를 쓰담 쓰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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