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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May 18. 2019

오십 년 만에 지킨 약속

아직 살아있다고, 아직 죽지 않았다고 읊조린다.

 49와 50


 오늘, 마지막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 글이 49번째의 글이기 때문입니다. 49에서 멈추려고 합니다. 49와 50이라는 숫자 하나 차이가 나에게는 시리도록 아픕니다. 나는 아직도 오십이라는 숫자에 망설이고 주저합니다. 나이 오십에 들어섰다는 말이 아직도 실감하기 어렵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오십이 되는 날에 내가 나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눈 질끈 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꼬박 2달이 걸렸습니다. 아주 먼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것처럼 생각이 복잡합니다.

 


 캐나다에 살다 보면 나이를 잊게 됩니다.


 캐나다에서는 나이를 잘 묻지 않습니다. 아직은 관공서의 어떤 서식에도 나이를 쓰는 칸을 보지 못했습니다. 캐나다에서 살다 보면 나이를 잊게 됩니다. 더군다나 나이를 만으로 셉니다. 내 나이는 만 48세입니다. 내 누이는 12월 28일생입니다. 태어나서 한 살을 먹고 5일째 되는 날에 해가 바뀌었습니다. 고작 4일을 살고 나이 2살이 되었습니다. 한국식 나이는 코리언 에이지(Korean Age)라고 불릴 만큼 전 세계에서 유일한 방식입니다. 일본은 1950년부터 이미 서양식 나이 표기를 시행했고 한국을 제외한 모든 동양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나이를 묻는 사람은 결국 한국 사람입니다. 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해외에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애국자가 되는지도 모릅니다. 핸드폰도 그 흔한 애플 아이폰을 마다하고 삼성 갤럭시 S8을 사용합니다. 시계도 삼성 기어 S3 프론티어 모델로 깔 맞추었습니다. 차를 살 때도 짐에서 만나는 백인의 갑빠처럼 각진 미국 차를 고민하다가 결국 기아차를 샀습니다. 갑자기 한국식 나이가 가슴을 후벼 파고 들어와 버렸습니다. 나이 오십이 되는 날에 나잇값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감각이 둔해지는 만큼, 대신 용감해지는지도 모릅니다.



 나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이 없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나는 이 영화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속 대사를 읽고 혼자 실컷 울었습니다. 사랑은 변할 수 없다는 말이 나에게 어울리는 말이었고, 내 감수성을 옭아매기에 충분히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성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 끝까지 지키며 살 것 같습니다.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인생 전부를 걸어야 한다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불면의 밤에도 나를 지킬 수 있는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만 운동하고 그만둘 사람처럼 심하네.”


 어쩌다 아내가 같이 걷겠다며 쫓아와서는 핀잔하는 소리입니다. 투덜거리다가 결국 짜증을 내고 다시는 쫓아오지 않겠다는 바람에 천천히 걷는 법을 알았습니다. 갑자기 느려진 속도에 머쓱해져서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늙었다는 생각에 지지 않겠다는 강박에 잡혀있던 나의 걷기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나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이 없습니다. 무엇을 하든 감정 소모가 큽니다. 지금도 은퇴하는 날을 꿈 꾸며 삽니다. 어느새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가장으로 산다는 것은 내 인생을 걸어야 할 무게였습니다. 글은 나에게 사치였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속울음을 삼켰습니다. 한 번도 재미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직 살아있다고, 아직 죽지 않았다고 읊조리는 의식 같았습니다. 어떤 날은 온종일 책상에 앉아 한 줄도 쓸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썼다가 지우고, 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합니다. 쓰고 나서도 끊임없이 부끄러움에 대해 물었습니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거나, 글로 밥을 벌어 먹고사는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자신의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나는 죄인처럼 살았습니다.


 나와의 약속 때문에 두 달을 죄인처럼 살았습니다. 가능하면 매일 한 편씩을 쓰려고 했습니다. 시간을 단축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느슨해지면 또 포기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급했습니다. 달리기 선수가 결승선에 도착하면 더는 걸을 수 있는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고, 마음을 전부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내가 한눈을 파는 것만 같아서 괴로웠습니다. 돌잡이에 나는 연필을 잡았습니다. 아마도 어린 나에게 가장 신기하게 보였거나, 어떤 이유로 손에 들려졌거나 했겠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숙명이었던 같습니다. 오십 년이 걸린 약속일지도 모릅니다. 오십 년 만에 나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합니다.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를 끝냈습니다. 오늘부터는 문장을 숙성시킬 생각입니다. 더 지루한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내 책을 만들어줄 출판사를 찾거나 개인 출판을 하는 일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꿈을 꾸겠습니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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