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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Sohn Feb 06. 2021

내일은 엄마를 만나러 가야겠다

엄마, 내 생에 최고의 멘토!

누구에게나 엄마는ᆢ 세상 가장 귀한 존재이고 사랑의 대상이고 혹은 가장 가까워서 깊은 애증의 대상일 것이다.


때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밀 듯 아프고ᆢ 잠시라도 연락이 되지 않으면 걱정되고 애절하게 보고 싶은 존재이다. 딸들은 많이 공감하겠지만 내게도 엄마는 가장 가까워서 함부로 말하고 그래서 화풀이 한 걸 혼자 돌아와 미안해 울기도 많이 한 그런 ᆢ대상이셨다.


지금도 혼자 멍 때리다가 엄마가 자주 부르던 노래를 들으면 괜스레 울컥해 눈물이 나곤 한다. 살갑게 표현하진 못하지만 가장 귀하고 가장 가깝기에 그런가 보다.


내가 어릴 적에 엄마는 항상 바빴지만 시간을 내어 어린 시절 동생과 나를 앉혀놓고 `간호원 언니`라는 노래를 가르쳐주셨다. 요즘처럼 AI시대 컴퓨터 앞에서 근사하게 음악을 틀고 한 것이 아니라 엄마 한절 부르면 우리 한절 바로 따라 부르며 외우는 식이었고 엄마가 고음도 이쁘게 잘 내시는 걸 들으며 따라 외우는 식이었다. 노래도 잘 부르고 글씨도 잘 쓰고 여러 가지 재주가 많으셨는데 시대를 잘못 만나 하고 싶은 걸 많이 못 하셨다.


내가 아이를 낳고 키워가며 나도 내 아이가 사춘기를 맞아 툴툴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가 떠오르고 미안해져 혼자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나의 사춘기는 방황과 함께 답답한 현실에 저항감도 많았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않아 영어를 배우고 싶고 유학을 가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었다. 딸만 둘인 집에 장녀였기에 아빠는 조선시대 어른처럼 나를 살피고 통제하곤 하셨다. 험난한 세상에 여린 딸내미가 혹여라도 잘못될까 노심초사하셨을 것이다. 지금이야 이해가 되고도 남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도 늦게 귀가를 하면 무척 혼을 내셨다. 바쁜 일상 탓에 나를 데리고  왜 그러시는지 자분자분 설명할 시간도 없으셔서 일방적인 명령만 하셨으니 당연히 관계가 좋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강성인 아빠와 고집쟁이 딸 사이에서 엄마는 얼마나 조마조마하셨을지ᆢ지금도 죄송할 뿐이다.


사춘기의 딸이 집을 나가버리고 싶다고 했을 때 밤새 한숨도 못 자고 한 자 한 자 눌러쓴 편지를 책상에 살짝 놓고 가셨다. 나는 그 메모를 아직도 30년째 수첩에 꽂고 다닌다. 매년 다이어리를 바꿀 때 옮겨 놓다 보니 너덜거릴 지경이지만 그 손글씨로 쓴 편지는 내겐 바이블 같은 삶의 지침이고 지혜로운 나침반이었다.


"딸, 엄마가 살아오며 느낀 것이 많단다. 넉넉하게 베풀고 살아야 한다. 손해 보더라도 주변에 도움 줄 사람이 있는지 살펴라 ᆢᆢ
발밑에 적이 있단다. 항상 말을 조심해라 ᆢ
특히, 생각하고 말 좀 해라!라는 말은 참으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다.


정직하고 솔직하다 못해 거침없는 말투가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모르는 어린 딸이 걱정되어 악역을 맡아 수시로 잔소리하신 것이다. 엄마의 오랜 기다림 덕분에 내게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내셨다. 세월이 흘러 알게 된 것은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그 말씀들은 내게 맞춤형 교훈이었다.


부모님과 보스는 하늘이 정하는 것 같다. 그토록 엄했고 따스한 마음을 지닌 맞춤형 부모를 내게 보내주셨기에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신 것이다.


엄마는 30년간 수영을 계속해 오셨기에 탄탄하고 건강했고 언제나 명랑하고 밝은 분이시다. 지금은 많이 회복되셨지만 암에 걸려 수술을 받으셨을 때 나는 엄마가 곁에 없을까 봐 두려웠지만 강한 척했었다. 괜찮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약해진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병원비 많이 나온다고 걱정하셔 또 한바탕 화를 돌아서곤 하는  후회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도 배운 그대로 내 아들이 벌어온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 엄마가 될 것이다.


엄마의 희생 덕분에 나는 지난 30년간 외국기업ㆍ국제기구ㆍ미국 대학ㆍ과학기술단체 등 다양한 일터에서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자 워킹맘으로 살아왔다. 남다른 커리어를 통해 "사람이 답이다"라는 책도 출판하게 되었다. 엄마는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시며 행복하다고 하셨다. 나는 미안하고 송구한데 ᆢ엄마는 고맙다고 하셨다. 다시 태어나면 축구선수를 하고 싶고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엄마는 70이 넘은 나이에도 영어공부를 하신다. 내가 영어를 좋아하는 DNA는 엄마로부터 온 듯하다. 아마 지금 시대 태어나셨다면 박사까지 공부를 하셨을 듯한데 엄마는 나의 잘됨이 그저 좋으신가 보다. 생각해보니 나는 엄마를 위해 해 준 것이 없는데 말이다.


지금 내 나이 50대가 되어, 나보다 어렸던 당시 엄마의 나이들을 떠올려보니 마음이 아프다. 여자로서 30대는 이쁘게 꾸미고 여행도 가고 놀고 싶었을 텐데ᆢ 서점을 세 개나 운영하며 딸들을 키우시느라 힘드셨을 게다. 그 무거운 책 무더기를 들고 억척스럽게 살아오시느라 40대는 몸도 아프고 ᆢ또 사춘기 딸 때문에 노심초사했을 테고 50대는 허망한 것도 많았을 텐데 ᆢ 그리고 나도 앞으로 걸어가게 될  60대ᆢ70대ᆢ80대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난 다시 태어난다 해도 엄마의 외로움과 아픔과 사랑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내 인생 최고의 멘토인 엄마는 말을 절대 듣지 않는 멘티 때문에 일생을 그렇게 걱정과 염려로 살아갈 것이다. 그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이 사랑한다. 여전히 나는 말을 살갑게 할 줄 모르고 툴툴거리고 부족한 딸이다.


내일은 엄마를 만나러 가야겠다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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