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색채의 본질을 탐구한 노력형 화가!
20년 만에 열린 마티스 단독 전시회. 화려하고 강렬한 화풍보단 모네처럼 파스텔톤의 잔잔하며 부드러운 느낌의 인상파 작품을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지라 마티스전에 큰 관심과 기대는 없었지만, 20년 만에 열리는 단독전시회라는 점에 상당히 솔깃하기도 했고, 마티스라는 거장의 작품을 한 번에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을 것 같아, 무려 평일 휴가를 내고 다녀왔다.
결과적으로 대만족. 심지어 마티스에 완전 팬이 되어버렸다. 항상 전시 후 기념품으로 마그넷과 포스트카드를 구매하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도서까지 구매했다! 마티스의 초기작품부터 말년까지 연대순으로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83년이란 나이로 심지어 병마와 싸워가면서도 죽기 직전까지 본인이 추구하던 작품의 세계관과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연구하며 새로운 업적을 남긴 노력형 화가. 그의 치열함과 열정이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고스란히 느껴진 덕분에, 솔직히 작품 자체보다는 마티스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흥미와 존경심이 뿜뿜 샘솟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마티스라는 인물에 입덕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전시였던 것 같다.
이번 전시는 크게 8가지 테마로 구성되었으며 회화부터 조각까지 전부 마티스 작품으로만 전시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총 155점이 전시되었는데 지루함 없이 상당히 알찼던 전시였던 것 같다.) 전시 순서는 1890년대 후반부터 1900년도 초반까지 이어지는 초기작을 시작으로 1차 세계 대전 전후 시기의 작품들 (다소 우울한 색채가 주를 이뤘던..)을 지나 3번째 구성은 모두 조각 작품이었는데 사실 이번 전시 통틀어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개인적으로 상당히 강렬했고 인상적이었다. 특히 <뒷모습 연작 시리즈> (1909-1930년)는 작품 크기도 한쪽 벽면 전체를 다 차지할 만큼 거대했기 때문에 임팩트가 컸는데, 약 20년에 거쳐 만든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마티스의 화풍이 변화하는 변곡점에 늘 조각 작품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인물과 배경의 일체화 (근원의 탐구)를 고민하면서도, 인물이 배경에 흡수되지 않는 그 경계선을 찾고자 했던 노력이 이 연작 시리즈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던 것 같다. 마티스의 회화 작품 중 특징인 인물과 배경을 구분하는 "두꺼운 윤곽선"의 의미가 마티스에게 있어 어떠한 의미였을지 조각 작품을 보며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참 인상 깊었다.
유일하게 이번 전시에 사진촬영이 가능했던 4 - 6번째 전시관은 1920년대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시기까지의 작품으로, 주로 마티스라고 하면 떠오르는 작품들, 강렬한 색채와 화려함이 특징인 인물화나 정물화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고, 뿐만 아니라 마치 아이가 그린 것 같은 느낌의 드로잉/데생 작품들도 만나 볼 수 있었다. 마지막 7-8번째 테마는 말년의 마티스의 컷아웃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큼직한 작품들 위주로 전시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빠르게 감상이 가능했다. 마지막은 건축 분야까지도 손을 뻗었던 마티스가 기획하고 프로듀스 한 로사리오 예배당의 공간을 담은 짧은 단편 영상을 감상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모든 전시테마가 마티스의 작품만으로도 구성되었지만 회화부터 조각, 컷아웃 작품이라는 새로운 창작물과 건축물 (영상)까지..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광범위하면서도 다채로운 구성 속에서도 마티스의 작품임을 알게 하는 무언가를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함께 찾고 고민했던 것 같다. 마티스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색채와 선의 본질과 근원이 무엇이었는지를 같이 고민하면서 마지막 그 영상 속에서 마티스가 찾고자 한 근원적인 물음이 3차원이라는 공간에서 구현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티스의 작품은 원색의 강렬함과 이국적이고 다채로운 색채와 선의 표현들 때문에 화려한 작품이란 이미지가 원체 강했는데, 사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단순함을 추구했던 화가였다. 그래서 선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드로잉, 데생 습작들도 이번 전시에서 많이 접할 수 있었는데 색채의 화가 마티스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지라 무채색의 드로잉 작품이 심심해 보이기도 하고 의외라고도 생각이 들었지만, '본질의 탐구'라는 마티스의 실험정신과 탐구정신을 한번 더 생각하며 감상하니, 초등학생이 그린 것처럼 낙서같이 보이는 데생 그림들도 새삼 다시 느껴졌다. (너무 깊게 의미부여를 한 것일 수도 있으나..ㅎ)
사실 이러한 선에 대한 연구, 본질에 대한 탐구들이 조각에서도 빛을 발한 것 같고, 조각을 통해 형태의 단순화를 실험하고 이를 또 회화에 반영하면서 마티스 본연의 작품 세계관을 창조한 것 같다. 사실 화려해 보이는 그의 작품이 정말 그렇게 보이는 것은 원색에 가까운 다양한 색채를 쓴 효과도 있겠지만, 가만 보니 선으로 구성된 다양한 패턴들이 한층 더 화려함을 가미했던 것 같다. 선과 선을 이은 체크모양이라던가, 이국적인 다양한 문양들과 배경의 장식들이 역시 선과 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러한 것들이 색채와 조화되어 더욱더 화려함을 가미한 것이 아닐까.
앙리 마티스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 바로 창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창문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실내 아틀리에를 모티브로 아틀리에의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바깥 풍경도 같이 묘사되곤 한다. 그에게 아틀리에는 바깥세상과는 또 다른 특별한 (그만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아틀리에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바깥 풍경은 실제 현실과는 다른 세상이 묘사되었을지도, 그가 바라고 염원하는 세상이 묘사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제1차 2차 세계대전이라는 암울 하며 격변의 시기를 겪은 그였기 때문에 아틀리에라는 예술적 공간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바깥세상은 좀 더 평화롭고 행복한 곳이었으면 하는 것을 염원한 것이 아닐까.
사진 촬영 불가였기 때문에 눈으로만 감상할 수밖에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회화 전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금붕어가 있는 실내> 작품. 마티스 작품치고 드물게 전체적으로 푸른색이 메인인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하거나 암울한 느낌보다는 가운데 주황빛 금붕어의 악센트 덕분인지 차분하면서도 묘한 신비로움이 더욱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큐비즘 / 입체파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다각도에서 바라본 것 같은 건물이나 정물들의 부조화스러움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어항에 비치는 바깥 풍경의 묘사라던가, 창문을 경계로 실내와 실외가 구분이 되어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색감이나 선의 표현들로 인해 안과 밖이 마치 이어지고 있는 느낌을 주는 표현들이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마티스는 투명함을 참 잘 표현했던 것 같다. 어항 속 금붕어의 묘사에서도 느꼈지만, 인물화에서도 그의 색채 표현은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오리엔탈리즘이나 이국적인 것에도 관심이 많았던 마티스는 모로코나 러시아 등 해외에도 자주 여행을 갔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모아 둔 각종 장신구들이나 데코레이션들을 화실에 두고 인물과 배경 표현, 배치에 대해 다양한 연구와 고민을 했다고 한다. 특히 오리엔탈리즘의 화려함이 느껴지는 씨스루 옷을 입은 여인의 살갗 표현이라던가, 주변의 화려한 배경들의 문양들과 섬세한 선의 표현들을 보고 있다 보면 생동감이 느껴져 마치 그림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말년에 몇 차례 수술을 거쳐 건강이 악화된 그는 회화를 그릴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종이를 오려 붙이는 식으로 새로운 장르의 컷아웃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의 예술관을 끊임없이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사실 컷 아웃 작품을 통해 그가 진심으로 찾고자 했던 색채와 선의 본질에 대해 일부 해소가 된 것으로 느껴진다. 어릴 때 색종이를 오려 붙인 것 같은 그런 작품들로 보였지만 평생을 색채와 선을 연구해 온 마티스의 입장에선 좀 더 근원적이고 심오한 어떤 해석과 울림을 전달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한 총체적인 그의 예술관이 공간으로 집대성된 작품이 방스에 있는 로사리오 예배당인 것 같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비친 빛의 향연들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채의 조화까지 고려한 배치와 선들.
심플한 듯 보이면서도 많은 고민들을 통해 그려졌을 선으로 표현한 성화들.. 선과 색의 근원과 본질만을 응축하여 공간으로 표현한 마티스 세계관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대기 순으로 작품을 따라 그의 고민들을 함께 생각하면서 마지막에 예배당의 공간들을 담은 영상을 보고 있자니 뭔가 마티스가 추구해 왔던 것들과 발자취들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것 같아 더욱 울림이 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