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믹 작품에 큐비즘을 입히다니!
날씨가 좋았던 일요일 아침. 늘 보던 거장들의 회화 작품도 좋지만 뭔가 유니크하면서도 가벼운 전시가 보고 싶은 그런 주말이었다. 지금 한창 전시가 진행 중인 데이비드 호크니를 볼까, 내가 좋아하는 인상파 전시를 보러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오늘만큼은 평소 잘 접하지 못했던 장르 위주로, 작품 수는 적지만 알찰 것 같은 그런 전시가 없을까 고민하면서 구글맵에 미술관들을 하나하나 클릭하던 찰나, 눈에 들어온 요쿠모쿠 뮤지엄!
이전에 오모테산도에 있는 오카모토 타로 기념관 가는 길에 우연히 지나쳤던 곳으로 한번 가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던 곳이었다.
(나름 고급) 과자 브랜드로 친숙한 요쿠모쿠가 뮤지엄도 운영하고 있다니, 전시 정보를 찾아보니 피카소의 세라믹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다. Picasso Ceramics : The modern touch
주로 피카소 컬렉션 위주의 전시가 대부분이며 1년 단위로 전시 테마가 바뀌는 듯 싶었다. 이번 전시 역시 작년 10월에 시작된 전시로 올해 9월 말에 끝나는 전시였다. 오늘의 픽은 이곳이다!
뮤지엄은 작고 아담하고 예뻤다. 약 30여점의 피카소 작품들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작품 별로 상세한 해설 (판넬 뿐만 아니라 오디오 가이드까지 무료로 제공된다!) 뿐만 아니라 전시작품과 비교해서 볼 수 있는 레퍼런스 자료들도 풍부하게 담고 있어 한층 더 깊이있는 감상이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전시에 비해 작품 수 자체는 적었지만 작품 하나 하나가 주는 울림이 그 어느 때보다 컸던, 그런 전시였다.
피카소의 세라믹 전시를 둘러보고 느낀 점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1. 피카소는 천재가 맞다.
2. 세라믹 작품에도 큐비즘을 입히다니. 피카소는 진짜 천재가 맞다.
3. 천재 피카소도 보고 배우고 따라했던 스승 (마네, 마티스 등) 들이 있었구나.
4. 세라믹 작품이 좀 더 (회화보다) 익살스럽고 재미를 가미한 느낌! 유머러스한 면도 있는 남자였어!
큐비즘을 회화 뿐만 아니라 조형물에도 반영했다는 것이 신선했다. 회화 주제로도 자주 다뤄졌던 정물이나 인물이 세라믹 위에선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재미있던 부분 중 하나는 피카소 작품에 자주 등장하던 정어리 (イワシ、 이와시 생선) 가 그릇 위에 표현된 카모플라주 기법을 가미한 작품이었는데, 이 외에도 물병 안에 물병을 표현한 작품과 같이, 현실과 허상의 교묘한 경계선에서 피카소 특유의 익살스러움을 강조한 작품들이 인상 깊었다. 회화에서 느껴지는 신비롭고 때로는 그로테스키한 느낌보다는 재치있으면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는 그런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피카소 작품에 자주 등장했던 또 다른 테마 중 하나는 투우였다. 투우사와 소의 형태가 예쁘게 알아볼 수 있는 작품도 있는 반면 큐비즘의 요소를 가미해 어떤 형태인지 알아볼 수 없는 작품까지 일렬로 배치된 작품들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보니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천재였던 피카소도, 존경하던 화가, 스승들의 작품들을 참고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하곤 하였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마네와 마티스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모티브로 큐비즘으로 표현한 회화 (레퍼런스) 그리고 이를 좌우의 구도만 바꿔 표현한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우측 하단에 개미라던가 약간 뜬금없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 요소들이 군데군데 숨어있었다. 그동안 피카소 작품을 보면서 유머러스함은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매력이 넘치는 화가였어!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하고 익살스러우며 재치있다고 느꼈던 작품은 가지각색의 형태로 창조한 물병(화병?) 작품이었는데, 콜라쥬+큐비즘+유머 3요소가 모두 가미된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그런 작품들이었다.
사람의 얼굴이나 새의 형태로 표현된 물병이나, 앵그르의 샘 회화 그 자체를 물병 안에 콜라쥬로 표현함으로써 물병 안의 물병을 표현한, 실제와 허상을 넘나들며 재치있게 표현한 작품들을 보며 개인적으로 새로운 느낌의 피카소를 만나게 된 것 같아 인상 깊었다.
라이벌이면서 스승이기도 했던 마티스의 작품들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세라믹 작품들을 마지막으로 전시가 끝난다. 짧지만 강렬했던 피카소 세라믹 전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의 피카소를 접할 수 있던 계기가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참 의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