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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Jul 23. 2020

불효녀가 된 건 내가 어리석었기 때문이다.

3년 전 아버지는 폐암 초기 진단을 받으셨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다른 가족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세부적인 종합검진을 받고 수술 날짜를 예약하셨다.  그리고 수술 당일 아침 일찍 어머니와 둘이서 직접 운전하여 수술을 받으러 병원으로 가셨다.

그 날이 기억난다. 당시 출산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밤 수유를 하고 잠과 사투를 벌이다 아침에 쪽잠 자고 있을 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잠이 부족했던 나는 조금이라도 더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에 일어나서 확인할 생각으로 어디서 전화가 왔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동이 계속 울린다. 아이가 깰까 봐 나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확인하였다. 평일 아침 일찍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아침부터 무슨 일이에요?'

'아니.. 방서방 전화를 안 받네? 혹시 집에 없니?'

'아! 지금 자고 있어서 전화 못 받았나 봐요. 왜요? 무슨 일이에요?'

'그래.. 그럼 나중에 전화 좀 달라고 해라~'

'왜요? 급한 거예요? 무슨 일 있어요? 저한테 말씀하세요~제가 전달할게요~'


수화기 너머로 망설이는 듯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생기긴 했구나 느껴졌다.


'지금 여기 병원이야. 아빠 조금 있으면 수술하러 들어가. 아빠가 너희 걱정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방서방이라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런데 전화를 안 받네..'


이게 무슨 말? 아빠가 왜 병원에?? 간단히 엄마에게서 이야기를 듣고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엄마도 마음이 굉장히 혼란스러우셨을 것이다.

혼자서 보호자 대기실에 계시기 힘드셨을 것이다. 누군가가 옆에 함께 있어주길 바라셨을 것이다.

하지만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이기에 어린 손녀를 데리고 오라고 말할 수 없으셨나 보다.

엄마는 아버지가 아시면 괜한 말 전했다며 걱정하실게 뻔하니 한사코 오지 말라고 하시며 그냥 알고만 있으라고 하셨다.


잠에서 깬 신랑에게 이 소식을 전했더니 전날 술을 잔뜩 마신 상태로 숙취로 인해 운전을 할 수 없고, 오늘은 수술 당일이라 깨어나셔도 정신없으실 테니 내일 병원에 다녀오자고 하였다. 나는 그렇게 하자고 그 제안에 동의했었다.


그런데 다음날 신랑한테 다른 일이 생겨 또 하루를 미루게 되었고 퇴원 날에 맞춰 신랑이 대신 몸이 불편하실 아버지를 대신에 운전해 드리기로 했었다. 퇴원 당일 짐을 챙겨 병원으로 가는 중 예상했던 시간보다 퇴원수속이 빨라져 우리가 도착하려면 1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버지는 기다리는 시간에 집으로 가는 게 낫겠다며 수술 당일날처럼 직접 운전을 해서 어머니와 둘이서 집으로 가셨다.


아버지는 엄마가 괜한 말을 해서 걱정하게 만들었다며 괜찮다고 하셨지만 결국 나는 아버지가 큰 수술을 받으시고도 병문안 한번 가보지 않은 괘씸하고도 못난 딸이 된 죄송스러운 마음에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신랑이 미웠다. 그동안 신랑의 제안에 동의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날 밤.. 백번이고 나의 어리석음에 후회했다. 그 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 부모는 내가 챙겨야지!


왜 굳이 신랑과 함께 하려고 했을까? 어린아이가 있어서? 내 몸이 그렇게 힘들었었나?

아이를 신랑한테서라도 맡겨 놓고라도 내가 차를 몰고 다녀 올 수도 있었을 텐데...

상황판단이 그렇게도 안되었나 싶다가도 나보다도 이성적인 판단을 잘하는 신랑이 하루는 술 때문에 하루는 일 때문에.. 못 가게 된 상황을 만든 신랑도 미웠다. 만약 입장을 바꿔 같은 상황이었어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급하다던 일도 제쳐두고 혼자서라도 아마 곧장 달려갔을 것이라는 불편한 생각들만 일렁거렸다.


"당신, 왜 우리 부모님에게 소홀해?"라고 서운함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네 부모잖아~ 이런 것 까지 강요받아야 해?"라고 한다면?

"당연한 거 아니야?  

나는 그래도 당신 부모에게 성의는 보이는데 당신은 아니잖아?" 하며 대답하는 게 옳은 걸까?


하지만, 이것은 보상심리일 뿐 꼭 당연히 행해야 하는 의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두 객체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지만 그의 부모까지 내 부모처럼 섬겨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30년 평생을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잘 키워준 덕분에 인연이 되어 서로 평생의 동반자로 만나게 되었지만,

내 부모처럼 행동하고 마음을 여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내 딸같이, 내 아들같이, 내 부모같이 행하려 하지만 어려운 건 어쩔 수 없다.

개인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도 개인차가 있기 때문이다.

쉽게 허물없이 지내는 가족들이 있는가 하면, 결혼 10년 차에 부부생활에는 문제없는 사이지만 서로의 부모가 어려워 가끔씩 왕래하는 가족들도 있다.


서로의 부모를 챙기지 않는다고 해서 이혼사유가 될 수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이것은 자발적 선택이지 강요해서 되는 건 아닌 듯하다.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행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들통나고 만다.

내가 행한 행동에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꼭 그에 대한 보답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부라 해도 내 맘 같을 수 있을까?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누굴 탓해서 무엇하랴. 내가 못나고 어리석은 것을. 내 효심이 부족했던 것을.


그날은 젖몸살의 가슴통증보다 더 마음이 시려온 날이었다.

3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버지를 볼 때마다 그날의 일이 떠오른다.

불편한 진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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