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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이쭝이 Oct 21. 2024

5·18과 '소년이 온다'

영·호남 지역감정의 시작

IMF 외환위기가 우리라를 절망에 빠뜨리고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맞붙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승리하며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됐던 1997년 겨울.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내 뒤에 앉아있던 두 명의 40~50대 아저씨들이 김대중 당선자에 대한 험담과 함께 전두환에 대한 칭찬을 쏟아내던 기억이 난다.

내 고향은 경상도이고 고향에서 출발해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 승객은 모두 경상도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당시 그 버스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전두환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 모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통신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지역 간 교류도 활발하지 않았던 1980~1990년대 영·호남은 지역 간 갈등이 심했다. 상대 지역과는 결혼도 하지 않고 영남은 롯데, 호남은 해태 제품만 산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중학교 때 아는 친척 아저씨가 우연히 일이 있어 전라도에 갔는데, 슈퍼마켓에 가서 '롯데 봉봉' 음료를 달라고 했더니, "롯데 안 판다"라고 화를 내며 '해태 쌕쌕'을 주더란 얘기를 듣고 함께 분노하기도 했다.

5·18도 경상도에선 '폭동'으로 치부됐고, '빨갱이'가 주도했다는 말들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20살에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만난 첫 친구들이 우연히도 모두 광주 출신이었다.

그때 만난 광주 친구들은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광주 시내 술집이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간 공짜여서 수능 끝나고 정말 재미있었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완전히 딴 세상 얘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군대 가기 전까지 그 광주 친구들과 1년 넘게 친하게 지냈고, 아무런 지역감정이나 서로의 다른 점도 느끼지 못했다. 이후 최소한 나는 전라도나 광주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20대 시절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던 내가 가장 이해가 가지 않던 부분이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노태우의 당선이었다. 내 대학생 시절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로 민주화 관련 콘텐츠가 쏟아졌고,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민주화운동이 집중 조명됐다.

그런데 그렇게 열망했던 민주화와 직선제를 쟁취한 결과가 노태우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매우 의아했다.

물론 1987년 12월 대선 당시 기억이 없던 것은 아니다. 내 고향에선 김영삼 후보에 대한 인기가 높았고, 기차역 광장에 김영삼 후보가 유세를 왔을 땐 엄청난 군중이 밀집했던 장면도 생생히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김영삼과 김대중 후보가 단일화를 하지 못해, 어부지리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국민들이 군부독재 세력이었던 노태우 후보를 찍었다는 사실이 이해하긴 어려웠다.

지난 주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이자 5·18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그리고 그동안 이해가 가지 않던 노태우 당선과 영·호남 갈등의 이유를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

'소년이 온다'에서 한강 작가는 5·18에 아픔을 방사능 피폭에 비유했다.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은 깊은 아픔이란 것이다. 그리고 왜 5·18 피해자들이 지금까지도 계속 이 문제를 얘기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됐다.

나도 길지 않은 40여 년 인생을 살아오며 대부분의 일들은 설령 나쁜 일이라도 망각의 영역으로 넘겨버리곤 했다. 그러나 몇몇 극도의 부조리한 일로 인해 내가 피해를 입은 부분에 대해선 그 상대를 잊지도 용서하지도 못한다. 그 용서는 오직 내게 피해를 입힌 당사자의 진정한 사과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나에게 사과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하물며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심한 부조리와 폭력을 당한 5·18 당사자들은 가해자 중 누구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과거 자료나 신문 기사 등을 찾아보면 1980년 이전까지 영·호남 간의 정치 성향의 차이나 지역감정은 크게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1980년 5·18 이후 전두환 집권기를 지나면서 영·호남 갈등은 확대돼 왔다.

아마도 그 갈등의 단초는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등장과 그를 지지한 영남권에 대한 호남권의 불만이 큰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그 결과 호남은 진보 정당 투표 쏠림으로 이어졌고, 영남은 그 반대 방향으로 투표가 이뤄져 온 듯싶다.

우리 정치의 정상화와 지역 갈등을 해소를 위해서라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소년이 온다'가 널리 읽혀, 40년 가까운 숙제를 풀고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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