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간장을 대접하고 싶답니다.

by JS

어느 날엔가 남편이 말했다.

"우리 회사 사람들이 여보를 궁금해해."

"나를 왜?"

"내가 여보 얘기를 많이 했어. 집에 친구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어떤 얘기를 했을지 짐작이 가서 막 웃음이 났다.

"자랑하고 싶었어?"

"응!"


반짝이는 눈으로 대답하는데 귀엽기 그지없다.

나와의 결혼이 인생 최대 행운이라고 늘 말하고 다니는 남편은 회사에서도 여과 없이 팔불출 티를 내고 다녔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집들이를 하는 것으로 되어버렸다.


집에 손님이 오는 걸 좋아하는 나에겐 달가운 일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이 잔뜩 놀러 오는 것도 좋았고, 남편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 어떤 분들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시간 되시는 분들만 소규모로 모시기로 했던 집들이는 남편이 입을 떼자마자 순식간에 인원이 불어나 어느새 8명이 되었다.

남편과 나까지 포함해 총 10명. 어떤 메뉴를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다양한 메뉴를 모두 준비하면 좋겠지만, 인원도 많거니와 내 체력도 그만큼 여유롭진 않아 한두 가지 정도만 직접 만들고 나머지는 배달음식으로 함께 차리기로 했다.

메뉴를 고민하는 내 옆에 찰싹 붙어 앉은 남편.

"여보, 집들이 때 뭐 만들어줄까?"

"난 여보 음식은 다 좋아."

"그중에 특별히 맛있었거나 먹고 싶은 건 없어?"

"간장."

"응? 내가 그렇게 요리를 못했나..."

"달래 간장."

"달래장?"

'그걸 어떻게 집들이 음식으로 내놓니?' 하는 표정으로 오빠를 쳐다봤다.


남편은 평소 내가 만들어두는 달래장을 무척 좋아했다.

맨밥에 달래장만 얹어 먹어도 맛있다고 했고, 내가 약속이 있거나 야근하는 날엔 혼자서 계란프라이 하나에 달래장 슥슥 비벼 잘도 먹었다.

덕분에 우리 집에서 떨어지지 않는 반찬 중 하나였다.

나도 내가 만든 달래장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건 우리 둘의 이야기지 손님상에 그런 조촐한 메뉴를 올릴 수는 없었다.



"계란 구워서 다들 간장 한 숟가락씩 나눠주자. 감동해서 달래장 팔라고 할 수도 있어. 둘이 먹다가 둘 다 죽을지도 몰라. 아, 밥솥이 모자랄 수도 있겠다. 다들 밥을 두 공기씩 먹을 테니까. 간장도 업소용으로 미리 사둘까?"

"그만."

말리지 않으면 우주 끝까지 갈 기세로 주접을 쏟아내는 남편의 입을 막았다.

"그거 아니야. 좀 있으면 밥솥도 사겠어."

"좋은 생각이다."

"누가 집들이 메뉴에 간장 계란밥을 대접해!"

"맛있는데... 여보 간장, 모두가 맛봐야 하는데..."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눈빛과 목소리는 무시하기로 했다.

남편 회사 동료분들을 모시고 처음 하는 집들이에 그런 메뉴는 가당치도 않았다.


결국 어떤 메뉴를 좋아하는지 물어봐달라고 부탁했고, 회사 분들은 남편이 평소 입이 마르고 닳도록 자랑한 '와이프가 해준 음식 메뉴들' 중 김밥을 골랐다.

두툼한 소시지가 들어간 소시지 치즈 김밥과 참치 마요를 가득 넣은 참치 김밥.

두 가지가 메뉴로 선정되었다.

간단한 메뉴 같기도 했지만, 나를 배려해 주신 것 같아 감사했다.

그래서 집들이에선 김밥 열 줄을 싸고, 함께 먹을 떡볶이를 만들고, 치킨과 피자는 배달을 시키기로 했다.






집들이 당일.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거실에 성인 열 명이 모여 있으니 복작거렸다.

오랜만에 거실이 가득 찬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준비된 음식에 다들 놀라며 맛있게 먹어주셨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회사에 좋은 분들이 많다는 게 느껴져 안심이 되었다.

어차피 회사 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어디에나 있으니, 동료들만이라도 좋은 분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후식으로 커피와 빵을 먹으면서 메뉴 후보였던 달래장 얘기가 나왔다.

"그게 진짜 맛있거든요. 얼마 전에 처남도 먹어보더니 싸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와이프가 간장 계란밥은 집들이 메뉴로 안 된다고 해서...."

또다시 주절주절 길어지는 남편의 입을 틀어막았다.


착한 동료분들은 너무 궁금하다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먹어보고 싶다고 말했고, 남편은 회사에 싸가서 점심에 맨밥에 비벼 먹자는 창의적인 헛소리를 했다.

"다들 이렇게 받아주면 안 돼요."


휴일 점심 무렵 시작된 집들이는 해가 저물 무렵에야 끝이 났다.

모두들 잘 먹었다며 인사하고 돌아가고, 그제야 남편이 나를 폭 끌어안는다.

"여보 힘들었을 텐데, 고마워."

"안 힘들어."

"음식도 너무 맛있었고, 다들 재밌어했고, 나 기분이 너무 좋아."

"알아. 그래서 한 거야."



나도 안다.

오늘 하루,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 '와이프 자랑하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어서 신났음을.

남편은 평소에도 배우자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풀어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 있을 테지만, 오빠는 그런 이야기는 결국 자신을 낮추는 결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회사에서 '애처가'라고 소문난 남편은 그 호칭이 썩 마음에 드는 눈치다.

"칭찬 아닐지도 몰라. 여보 와이프가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안 궁금해할 수 있어. 그러니까 적당히 해야 해. 알지?"

혹시나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샐까, 착한 동료분들이 듣기 싫은 이야기 억지로 들어주고 계신 건 아닐까, 괜히 걱정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오빠를 단속한다.

팔불출은 적당히, 딱 한 숟갈만. 과하면 간장처럼 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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