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햄버거

by JS

남편과 나는 햄버거를 좋아하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편이고 남편은 매일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좋아한다.

야근할 때면 저녁으로 종종 햄버거를 사 먹어서 지겨울 법도 한데, 남편은 그래도 맛있다며 자주 찾는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함께 햄버거를 먹는 일도 심심찮게 있다.



우리 둘 다 입맛이 그리 까다로운 편이 아니라, 남들이 맛없다고 말하는 햄버거 체인점도 다 맛있었다.

브랜드마다 고유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집 근처에 다양한 체인점이 있다는 사실이 꽤 만족스럽다.

그날그날 기분 따라 골라먹는 재미랄까.






어느 날, 한 브랜드에서 신 메뉴를 출시했다는 광고를 봤다.

보통 도전적인 메뉴를 선호하진 않아서 먹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남편과의 여행에서 들뜬 기분 탓인지 괜히 그 메뉴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신메뉴를 주문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세상에."

햄버거가 맛이 없을 수가 있구나.



닭 대가리를 갈아 넣었다는 소문이 무성하던 학창 시절 매점표 햄버거도 맛있게 먹었던 나인데.

마요네즈 비슷한 소스만 대충 얹어도, 뭘로 만들었는지 모를 패티 하나만 있어도 맛있게 먹었던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갔는가.

이렇게 다양한 재료가 가득 든 갓 만든 따끈한 햄버거를 먹고 나서 못 먹겠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맛없어. 못 먹겠어."

"나도 먹어볼래."

내 감상평에 호기심 폭발한 우리 남편도 한 입 먹어보더니 "으엑." 하며 기겁했다.

아무거나 잘 먹는 우리 부부에게도 이 햄버거는 난제였다.

우리는 결국 다른 메뉴들로 배를 채웠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말했다.

"나 정말 잘살게 된 것 같아."

"응?"

"어렸을 때랑 비교하면 말이야. 그때는 외식도 할아버지 생신 때만 할 수 있었지, 내 생일엔 꿈도 못 꿨거든."

"나도. 집에서 고기 구워 먹는 날도 드물었어."

"중학교 매점에서 파는 뭘로 만들었는지 모를 햄버거도 그렇게 맛있었어."

"맞아. 만두도 맛있었는데."

"근데 지금은 비싼 햄버거 먹으면서 번이 어떻고, 패티가 어떻고 따지고. 맛없다고 안 먹기도 하잖아. 우리 정말 부자가 됐나 봐."

"맞아. 우리는 부자가 됐어. 외식도 하고 싶으면 언제든 할 수 있고 여행도 가고 싶을 때 떠날 수 있고."






지금의 삶에 만족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나는 한없이 작고 초라해질 수도 있고

'이 정도면 괜찮은데?' 싶을 수도 있고

'나 정도면 멋지지!'하고 자신감에 찰 수도 있다.


예전의 나는 타인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들의 장점만 보고 내 부족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편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우리 부부는 연애 시절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함께 하면서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그때마다 "우리는 여행 운이 좋아." 하며 즐거워했다.

정말로 운이 좋았던 순간도 많았다.

날씨가 맑았고, 도착하자마자 긴 줄이 줄어들었고, 횡단보도마다 초록불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보다 더 큰 건 마음의 관점 같았다.


비가 온 여행도 있었다.

그러면 비로 인해 젖어들어 노을을 한껏 담아낸 도로의 사진을 찍으며 "운치 있다. 예쁘다." 감탄했다.

기껏 알아보고 도착한 식당이 하필 그날, 이유 없이 문을 닫은 적도 있었다.

외국이라 난감해하며 근처 식당을 급하게 알아보고 들어갔는데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메뉴들과 친절한 종업원을 만났다.

살인적인 더위에 지친 여행도 있었다.

더위에 약한 내가 쿨 스프레이나 땀 닦는 물티슈를 가방에서 꺼내며 괴로워하면 남편은 그런 나를 위해 시원한 물을 챙겨주었다.

그 정성 덕에 날씨 때문에 치미는 짜증도 차분히 가라앉곤 했다.

누가 나를 위해 이 더운 날 물병 들고 따라다녀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건 그냥 긍정적이어서 그런 것 같아."

내 말에 남편도 동의했다.

"나쁘게 보려면 뭐든 나쁘게 보이고, 좋게 보려면 다 좋게 볼 수 있어."

창밖을 보는데 노란 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예전에는 여행에서 이동하는 시간은 그저 '아까운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남편과 나누는 대화나 잔잔하게 변하는 풍경이 주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우리가 긍정적인 건.

그러니까 내가 긍정적으로 바뀐 건.

아마 여보 덕분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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