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사이에 놓인 필연적인 거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기도 하고 또는 외롭게도 만든다. 혼자만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것, 정서적인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은 정형화된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이러한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질수록 마음에는 해로움을 줄 때가 있다. 무엇이든지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는 적당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최근 무릎을 수술을 하고 나서 6주 동안 목발을 짚으며 생활했기에 밖으로 나가기보다는 방 안에서 생활을 해야만 했다. 거동의 제약으로 의도치 않게 방 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바깥바람을 쌔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예전 같았으면 어떠한 핑계를 되어서라도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노력했었다면 지금은 완전히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 것 하나 혼자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탓일까?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의미가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요즘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오는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되짚어 보고 있다. 사람들이 줄지어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나 빼곡히 사람들로 채워진 지하철 안의 모습, 전날 밤늦게 잠이 들었기에 피곤함을 내쫓기 위한 커피를 마시는 일, 업무나 인간관계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며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 저녁에 소소하게 지인들과 만나 가벼운 수다를 떠들며 하루의 마감하는 일, 누군가에게 있어서 이러한 당연한 일들이 그토록 염원해 오던 일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은 창가 너머로 느껴지는 계절의 향기 사이로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울 것이다. 또는 갑작스레 직장으로부터 해고통지를 받은 사람은 매일 아침마다 출근을 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부러울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존재가 미약하여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하고 지내는 것 같다. 한번 아파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더 이상 당연하다고 여겨지지 않을 때 그 소중함을 새삼스레 알게 되는 순간인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욕구에 대한 참을성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무릎수술이 끝난 직후에는 통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통증에서 자유로워질 때는 휠체어보다는 목발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었다. 이제 목발이 익숙해지니 두발을 딛고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싶었다. 이처럼 욕심이란 사람에게 있어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인듯하다. 그래서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일반인이 우리가 욕심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싶다. 그럼에도 비우는 일처럼 기다림이 가져다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인내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기약 없는 기다림의 미학인 듯하다.
문득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몸이 다 나으면 언제 그랬냐듯이 익숙함에 속아 일상생활에 연민을 느낄 때가 올 것이다. 그럼에도 부디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의미를 찾아 헤매었으면 좋겠다. 당연함 속에 감춰진 가치를, 인내한 시간의 숭고함을, 누군가와 함께한 하루의 의미를.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미래에서 내다보았을 때 후회의 파편이 되지 않게 게을리 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