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스에서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벚꽃의 꽃망울이 맺혔다는 이상한 소식. 우리가 아는 벚꽃은 봄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대표적인 꽃인데 단풍철에 피는 꽃이라니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다. 개화하는 시기가 아닌데 꽃이 피는 것을 '불시 개화'라고 일 컸는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올해 여름이 무척이나 무더웠고 동남아에 있을법한 스콜이 우리나라에도 발생하면서 벚나무가 생명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꽃이 피는 시기가 아닌데 꽃이 피는 시기, 역설적이면서도 아름답다고 여겨진다. 마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달려왔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 예기치 않게 일찍이 마주하는 것처럼. 기약 없는 기다림보다 오히려 예기치 않은 불시 개화를 맞이하는 것이 더 낫게 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렴풋이 알고 있다.
정상적으로 꽃이 피든 불시에 꽃이 피어나든, 두 가지 모두 쉽지 않다. 하나의 생명이 움트고 열매를 맺기까지 그 과정은 단순해 보이지 몰라도 꽃은 자신이 가진 역량을 온 힘을 다해 바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 함부로 쉬이 입에 올려서는 아니 된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그 길이 간단하고 단순해 보일지 몰라도 막상 걸어보면 우리가 보지 못해던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시밭길을 지나치는 일은 늘 힘이 든다. 끝을 알 수 없어서 오는 불안감에 대해서 싸워야 하며 주변의 고까운 시선들로부터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지지를 받으며 헤쳐나가야 하기에 더욱이 힘들다. 그러다 가끔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만 같은 한계에 봉착했을 때 두 가지의 선택지를 강요받게 된다. 한계점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멈춰 서서 자기 연민에 빠질 것인가. 우리는 벚나무가 생명의 위협을 받아 불시에 개화하듯이 한계에 봉착했을 때 생존이라는 고결함 앞에 결심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생존에 대한 위협 앞에서 우리는 애초에 가지고 있던 기질 또는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던 능력이 발휘된다. 그렇게 우리는 아픔이라는 과정을 거치고서는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아픔이라는 과정에서 장미는 줄기에 가시를 돋으며 생존을 위해 몸부리 치듯이 우리 또한 아픔이라는 과정을 거쳐 삶을 쌓아간다. 알고 보면 달콤한 열매는 성공이라는 의미보다는 힘겨운 시간을 견뎌낸 시간에 대한 값진 경험일지도 모른다. 그 경험들은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중요한 영양분이 될 것이다.
결국은 서리 아래 꽃은 시들고 낙엽이 되어 썩어도 기어코 또다시 봄이 오면 흙 위로 새싹이 피우는 것처럼 이것은 금세 지는 이 덧없는 꽃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삶에 대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일희일비하기보다는 하루하루 도망치지 않고 매일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