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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Jul 14. 2024

이상한 일본인

경험을 통하여 습득한 지혜  

  아저씨의 도움으로 팜플로나 대성당 근처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유서 깊은 도시답게 알베르게 역시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팜플로나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을 위하여 오래된 교회를 개조하였는데 내부는 산티아고 화살표를 연상시키는 노란색 인테리어로 고된 하루를 마친 순례자들에게 생기를 선물해 주었다. 


문을 빼꼼 열고 들어가니 "안. 녕. 하. 세. 요." 곱슬한 갈색 턱수염이 매력적인 직원이 어눌한 한국어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인사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고  "HOLA!(안녕하세요!)"로 화답해 주었다. 그는 '쾅' 크레덴시알에 도장을 찍어주고 크레덴시알과 침대시트를 내밀며 엷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한국분이시네요. 재작년 봄부터 여기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올해 유난히 한국분들을 많이 오시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이 길이 상당히 유명한가 봐요."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어깨에는 스페인 그리고 산티아고에 대한 자부심이 한껏 깃들어 있었다.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생각에 잠긴 듯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저는 많은 순례자들을 만났는데 산티아고를 걷는 이유는 참 다양하더라고요. 누구는 종교적인 이유로 걷고, 몇몇 스페인 사람들은 취업을 위해 걷기도 해요. 특별한 도전이나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어떤 이유로 당신이 걷는지는 모르겠지만 산티아고는 긴 여정이에요. 당신이 이 길과 친구가 되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Buen Camino. "


 알베르게에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우리의 짧은 대화는 끝이 났다.


"Muchas Gracias.(정말 감사합니다.)" 그의 진심 어린 조언이 나의 마음에 따스한 온기를 가득 채워주었다. 감사의 표시를 하고 건네받은 침대시트를 들고 배정받은 침대로 향했다. 그의 따스한 마음처럼 침대시트도 포근하고 따스했다. 



 고된 하루를 샤워로 마무리하고 나왔는데 한국인 순례자분을 만났다. 부산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셨는데 방학을 이용하여 산티아고 순례를 하는 중이셨다. 이것도 인연이니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하셨다. 팜플로나 시내도 구경하고 엽서도 사고 마트에 들렀다가 약속된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선생님과 일본인 두 분과 앉아계셨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드셨다. 


"아란, 여기야 여기" 

선생님이 계신 테이블로 갔고 나에게 두 명의 순례자를 소개해 주셨다. 


"아란, 순례하면서 만난 일본분들인데 이쪽은 히라다상, 이쪽은 이와사상이야."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신 하라다상과, 키가 작고 안경 낀 이와사상은 순례길에서 오며 가며 몇 번 뵌 적이 있었는데 60대 후반으로 보였다. 동양인이라 더 눈에 띌 수밖에 없긴 했지만, 그보다 산을 내려갈 때 뒤를 돌아 거꾸로 산을 내려가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고 신기했었다. 잠시 동행했던 사비에와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와사상을 보며 '이상한 일본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아란이에요." 


  각자 소개를 하고 우리는 펠레그리뇨메뉴(*순례자들을 위한 오늘의 메뉴로 전식, 본식, 후식, 음료가 포함)를 주문하고 '걷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분은 일본 나고야에 사는 독실한 가톨릭신자고 '성지순례' 차원에서 걷고 있다고 하셨다. 일본은 사찰이나 신사가 많아 가톨릭 인구는 없는 줄 알았는데 내 앞에 두 명이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걷는 이유가 다르고, 나이, 국적, 언어가 모두 달랐지만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이유 하나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메인 요리까지 다 먹고 디저트가 나왔을 때, 이와사상 할아버지께 조심스럽게 여쭈어보았다. 


"할아버지, 어제 산에서 내려가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직선으로 내려가면 더 빨리 갈 수 있는데 왜 뒤로 내려가시는 거예요?" 나는 검지손가락으로 허공에 지그재그를 그렸다. 


"보다시피 나는 나이도 많고 체력도 좋지 않아. 똑바로 내려가면 미끄럽기도 하고 무릎에 힘이 들어가서 산을 내려왔을 때 상당히 힘이 들었어. 그래서 다리에 부담이 덜 가는 방법을 찾다 보니 뒤로 내려가게 되었어. 시간은 비록 더 걸리지만 무게가 덜 실려 무리가 덜 가는 것 같더라고." 


 할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으시면서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 말씀하셨다. 혹시 내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손짓, 무릎, 발짓까지 동원하여 정성스럽게 설명을 해주셨다.  


 뒤로 산을 내려가는 것은 네 번째 산티아고 경험을 통하여 습득한 할아버지의 노련한 지혜였다는 걸 아는 순간 부끄러워졌다.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상한 일본인 할아버지'라고 할 때 무언의 동조를 하였던 것과 선입견을 품고 이와사상 할아버지를 바라봤던 것을 반성했다. 부끄러운 마음에 할아버지께 사과를 드렸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와사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무언가 깨달은 듯이 씨익 웃으며 괜찮다고 말씀해 주셨다. 





팜플로나에서 저녁식사
히라다상과 대화/  비둘기 깃털이 행운을 불러온다면서 행운을 선물해주신 이와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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