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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Nov 21. 2024

멜리데

페드로의 위로

 뒤를 돌아보니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스페인 경찰 삼총사 중 한 명인 페드로가 서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가 되었다는 외로움은 그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폰세바돈의 한 식당에서 우리는 처음 만나 통성명을 했고 스테이크와 맥주를 먹었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이다. 삼인방의 강인한 체력과 빠른 걸음으로 늘 앞만 보고 걷던 그는 길 위에서 만날 수 없었는데 그를 여기, 멜리데에서 만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그의 목소리에 내가 놀란 표정으로 서있자 그는 특유의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


"맘마미아! 아란, 맞지?" 

"안녕하세요. 페드로 아저씨. 다른 아저씨들은 안 보이네요." 

"헤수스랑 페르난도는 낮잠 자고 있어. 나는 산책하러 나가려던 참이고. 그런데 너는 혼자야? 크리스티앙이랑 키 캐는 어디 있어?" 


 그의 입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나왔을 때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혼자예요." 


 우울해 보이는 내 모습에 페드로는 물어보는 대신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아란, 배 안 고파? 멜리데가 문어요리 유명한 거 알지? 알베르게 근처에 맛있는 뿔뽀집이 있는데 같이 갈래?"

"좋아요. 정말 먹어보고 싶었어요." 


 우리는 멜리데에서 유명한 뿔뽀전문점으로 갔다. 대표 메뉴인 뿔뽀요리인 '폴부 아 페이라'와 갈리시아 에스떼야 맥주도 함께 주문했다. 주문한 생맥주 두 잔이 나오자마자 나는 맥주잔을 들고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페드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Que Pasa?(께 빠사, 무슨 일이야?)"

"페드로아저씨, 아까 크리스티앙이랑 키캐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셨죠? 사실 저희는 산티아고까지 같이 걷기로 했어요. 그런데 제가 다른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예상보다 하루 일찍 산티아고에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그래서 팔라스데레이까지 같이 걷고 두 사람은 거기에 남았어요. 저는 거기서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왔고요." 


 페드로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시더니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페드로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서둘러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가 이기적이었어요.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두 사람과의 약속을 깨버렸으니까요.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여기에 왔어요. 버스에서 미안함과 고마움에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마저 들은 페드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란,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 맥주를 마실지, 문어요리를 먹을지 같은 일도 사소한 일조차 선택이야. 네가 했던 선택도 분명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라고 믿어. 그리고 내가 아는 크리스티앙이랑 키캐라면 분명 이해할 거야."  


"정말 그럴까요?" 나는 페드로를 바라보고 물었다. 그의 진심 어린 대답에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당연하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야. 가끔 후회와 그리움에 멈춰 설 때도 있겠지만,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법이잖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산티아고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선택을 믿고 후회가 남지 않도록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야." 


 페드로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가 주문한 '폴부 아 페이라' 가 나왔다. 그는 맥주를 한숨에 들이켜고는 웃으며 맥주를 한잔 더 주문했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철판 위에는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른 문어가 먹음직스럽게 올려져 있었다. 그 위에는 감칠맛을 더해줄 고운 파프리카 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나는 이쑤시개로 문어 한 점을 콕 집어 입에 넣었다. 쫄깃한 문어살이 입안에서 춤을 추는 듯한 식감이 전해졌다. 


"맛있지?"페드로가 웃으면서 물었다. 

"네. 이런 문어요리는 처음 맛보는 것 같아요." 추가로 주문한 맥주도 나왔고 우리는 후회와 걱정은 잠시 넣어두고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살룻.(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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