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정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가
한옥에 대한 기억의 습작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주말 아침, 드라이브 코스로 진관사를 향했다.
도착해 보니 은평 한옥마을도 거기 있었다.
분명 몇 년 전 왔었는데... 그때 휑했던 느낌과는 달랐다.
'셋이서 문학관'과 '한지 미술관'을 둘러보고 동네 구경을 하는데 사다리에 올라 한창 뭔가를 따는 부부를 만났다. 호기심 많은 아내가 묻자 "대추예요. 드셔 보세요"하며 왕대추 2개를 건네주었다. 그 넉넉한 인심만큼 달았다.
편의점에 앉아 잠깐 쉬다 보니
한옥 살아보기에 대한 잊었던 욕망이 다시 꿈틀댄다.
다시 만난 첫사랑처럼 설레기 시작한다.
내 서울살이 첫 집이 한옥이었다.
재수를 하러 상경했을 때
학원 근처를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 구한 아현동 하숙집이 바로 <건축학 개론>에 나온 집과 똑같은 구조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운데 작은 마당이 있었고
주인집이 살던 부엌과 마루 딸린 큰 방과
하숙생들이 묵던 작은 방들과 야외 욕실로 그 주위를 둘러싼 공간이었다.
입시에 실패한 재수생이란 아픔보다는
부모를 떠나 갓 독립한 스무 살의 설렘이 컸던 시기여서였을까?
힘든 재수생활, 낯선 서울살이 1년 동안 지냈던
그 작은 한옥집이 내겐 첫사랑처럼 기억에 남았다.
음식 솜씨 좋았던 주인아줌마가 토요일 간식으로만 끓여주시던 라면은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방문 밖 처마 아래로 떨어지던 밤비 소리는 왜 그렇게도 가슴을 후벼 팠는지...
지금 생각하면 좁고 불편했을 그 공간, 그 생활이 가끔 그립다.
언젠가 우연히 그곳에 다시 가 본 적이 있다.
하숙집을 포함한 과거 한옥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빽빽이 들어앉아 있었다.
역시...
그리곤 잊었었다.
그런데 화창한 가을 날씨 탓인가?
오늘 와 본 은평 한옥마을은
다시 나타난 첫사랑 한가인처럼 내 마음을 흔든다.
이미 안락한 아파트에 익숙해진 나를
자꾸 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