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본드형 Nov 28. 2021

분당 가는 길

새로움은 그리움으로 다시 돌아온다

전철을 탔다


토요일 늦은 오후

오랜 벗들을 만나러 분당에 가는 길이다.


작년에 서울로 이사 온 후

전철을 타고 그곳에 가는 건 처음이었다.

십 년을 넘게 출퇴근을 하던 3호선 역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양재역에서 신분당선으로 갈아타러 가는데

홍천을 홍보하는 광고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찍어 그곳에서 군 복무 중인 아들에게 톡을 보냈다.


아빠 : 홍천의 즐거움에 빠져봅시다~

아들 : 노잼 도시 홍천

엄마 : ㅋㅋ 외출 나간다고 좋아 햇음서

아빠 : 거기 많이 춥지?

아들 : 괘안아

엄마 : 곧 휴가네 좀만 참아 오늘은 이만


군대 참 좋아졌다.

아무리 주말이라지만

생각날 때 이렇게 바로 단체톡을 할 수 있다니...




따져 보니

분당에서 14년을 살았었다.


맞벌이 시절,

네 살배기 아들을 맡길 어린이집을 찾아 서울을 떠나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신도시가 주는 생경함에 정을 붙일까 했는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을 다 보내고 나니

어느새 우리 가족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반듯하고 넓은 도로.

깔끔하게 줄 선 가로수와 상점들.

단정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처럼 서 있는 아파트들.


하지만 거기서 보낸 세월은 

그리 반듯하지도, 깔끔하지도, 단정하지도 않았다.


새벽같이 지옥철을 타고 출근해

스트레스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매일 반복했으며   

홀로 늦깎이 유학을 떠났을 땐

남은 아내와 아들은 가끔 붕어빵으로 외식을 해야 했었다.


갑작스러운 말기암 진단을 받으신 아버지와

중풍으로 하세월 누워만 계시던 장모님을

차례로 보내드린 곳이 여기였다.


천당 밑에 분당이라 했으니
좋은 곳에 가셨겠지...




전철이 어느새 약속 장소인 정자역에 도착했다.

한때 유럽풍 까페거리로 꽤 북적이던 곳이었는데

토요일인데도 썰렁함이 느껴진다.


여기서 오래 살고 있는 친구 말이

새로운 가게들이 미금역 방향으로 계속 생겨나면서

손님들이 분산돼서 그렇단다.


역시 신도시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더 끌리나 보다.


신도시, 신기술, 신세대, 신사업...


새롭다는 '신(新)'자가 붙은 말들은 사람들에게

낯선 것의 설렘과 변하는 것의 두려움을 동시에 준다.


하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면

그 새로움은 익숙함이 되고 편안함으로 바뀐다.

그러다 또 다른 새로움을 만나 잠시 잊히기도 하지만

결국 그리움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오랜 친구(親舊)같은

'분당 가는 길'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 소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