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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Apr 15. 2021

어머니의 카톡이 드디어 날아왔다

추억의 음식이 또 하나 생겼다

콩나물 국밥에서
닭 육개장까지


아내와 서울숲 산책 갔다 돌아오는 길에 콩나물 국밥이 생각나 성수동 맛집을 찾아내 포장해왔다. 어제 한잔해서 그런지 국물이 시원했다. 늦게 일어나 식탁에 앉은 아들 녀석도 "어허 시원~하네" 하며 한 그릇을 싹 비운다. 벌써 시원한 맛을 아는 나이가 됐다니... 다 컸나 보다.


콩나물 국밥은 내게 어릴 적 추억의 음식이다.

가리는 게 많고 입이 짧았던 나였지만, 키 크는데 좋다고 들어서였는지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담백한 콩나물국은 김치 국물 넣고 깍두기 얹어서 잘도 먹었다. 콩나물 삶을 때 부엌 가득 풍기던 그 비린내마저도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난 주말, 청주에 내려갔을 때 어머니가 저녁상으로 끓여주신 닭 육개장도 오래간만에 먹은 음식이다.


음식 한번 하면 늘 양이 많고, 내가 충분히 먹지 않고 돌아오속상해하신다는 걸 알기에 가기 전 아침을 든든히 먹고 점심은 굶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이 잘 먹는다고, 누나네도 불러 먹이신다고, 

여든이 넘으신 나이에 전날부터 큰 닭 2마리를 사서 푹 고와 살들을 하나하나 찢어 준비해 놓으셨다. 닭고기를 못 먹는 며느리는 마침 함께 내려오지 못했으니, 솜씨를 제대로 부릴 얼마나 좋은 기회였겠는가.


저녁상이 차려지고 다들 배가 고팠는지 육개장 국물부터 손이 갔다. 그런데 내 입맛에는 간이 싱거웠다. 전에 한 번은 좀 짜게 드신다 걱정했었는데 이번엔 반대였다. 맛을 묻는 어머니에게 "좋네. 약간 싱겁긴 한데 건강에 좋지 뭐"라며 살짝 눈치를 봤다. 살짝 당황해하시는 기색에 바로 밥을 말려는 순간, 얼마 전 제대한 조카가 "소금 주세요"라는 말을 해버린다. 매형도 질세라 "밥을 말 거니까 나도 소금을 쳐야겠다"라고 한다. 어머니 얼굴을 못 보며 나도 소금을 쳤다.


다행히 간을 빼고는 옛 맛 그대로였다. 요즘 금값이라는 파도 듬뿍 들어갔고 오래 끓여서인지 진한 국물이 제대로였다. 난 허기도 컸던지라 밥을 말아 두 그릇을 후루룩 해치웠다. 어머니는 매형, 조카, 그리고 누나가 다 먹은 후까지 천천히 육개장을 드셨다. 보통 남이 해준 게 아닌 자기가 만든 음식은 요리하면서 맡은 냄새에 질려 맛이 덜하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어머니의 카톡이
드디어 날아왔다


평소 안부전화 상으로는 매일 먹고 싶은 거 생각나면 알아서 다양하게 만들어 드신다고 했는데, 사실 혼자 차려 먹는 음식이 얼마나 맛있겠나. 코로나 전만 해도 매주 노래교실에 다니며 트롯을 열심히 따라 부르셨는데 요즘은 집에서 TV만 보며 얼마나 답답하실까. 원래 시계처럼 성실한 분이라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부처님께 기도하고 <아침마당>에서 배운 스트레칭 체조를 거르지 않고 사시는 분이다.


가장 중요한 루틴 중 하나가 퍼즐 맞추기와 화투로 운세를 보는 건데, 혹시 모를 치매를 걱정하시는 게 분명하다. 나는 갑자기 생각난 듯 어머니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열어 메시지 작성해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 드렸다. 아무리 쉽게 설명했다지만 작은 화면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치는 게 영 시원치 않아 보인다. 몇 번의 연습을 시킨 후 숙제를 드렸다.


매주 먹고 싶은 음식 3개를 카톡에 써서 내게 보내라고.

그러면 다음에 올 때 사 오던가 재료를 준비해 같이 먹자고.

스마트폰으로 전화 걸고 받는 것도 익숙지 않은 어머니에겐 큰 도전이지만, 카톡 창에 자판을 띄워 글자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겨우 '육개장'  한 단어를 완성해 보이셨다. 사실 '닭 '육개장인데 첫 자의 받침이 너무 어렵다 하여 나중에 심화과정(?)에 다루기로 했다. 제법 뿌듯해하는 어머니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를 모시고 청주에 마지막 절정인 벚꽃길을 찾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어머니 카톡으로 바로 전송하며 어제 내준 숙제를 다시 상기시켜 드렸다. 사실 이걸로 스트레스받으시면 안 되는데... 걱정이 좀 되긴 했지만, 당신의 성실성을 믿고 기다렸다.  


그리고 어제 주말 저녁, 드디어 카톡이  날아왔다.

첫 메시지가 음식 3개가 아닌 "서울 대전 부산"으로 찍혔. "잘했어요, 어머니" 바로 답장했더니 금세  "육개장"이라고 다시 날아온다. "그렇지, 연습 많이 하셨네" 칭찬을 듬뿍 담은 답장을 다시 보내고 나니 속으로 너무 기뻤다. 아직 '닭 육개장'까진 아니지만 성공이 머지않은 듯했고, 무엇보다도 난생처음 어머니와 나눈 카톡 대화였다. 그렇게 우린 카톡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추억의 음식이 또 하나 생겼다.

구수한 냄새나 달콤한 맛보다는

어머니의 정성과 서툰 메시지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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