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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독립을 선언했다

by 본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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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에서 알림톡이 왔다. 아들이 작업실 겸 아지트 겸 월세집을 구해 주소를 옮겨 더 이상 내 가족(세대원)이 아니라는 안내문이다.

시원섭섭하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품 안에 자식이 어른이 되어 공식적으로 독립 선언을 한 인데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허전한 게 부모 마음이다.




졸업 후, 친구의 작업실을 빌려 쓰며 여기저기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모으더니 지난주 드디어 당근마켓에 싸게 나온 부동산을 가계약했다고, 그런데 보증금이 좀 부족하다고 부모에게 불쑥 SOS를 쳤었다.

등기부상 소유나 채무 관계는 제대로인지, 동네 환경이나 집 상태는 어떤지, 걱정과 질문들에 자기가 알아서 한다며 대충 얼버무리려는 아들 녀석이 못 미더워 아내와 나는 그날로 현장답사를 갔었다. 학교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 떨어진 당산역 근처 빌라촌의 집인지 창고인지 모를 낡은 건물에다, 바닥 장판 아래 습기가 올라와 곰팡이가 핀 방 2개짜리 퀴퀴한 실내는 눈살을 찌푸리게 지저분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아들의 선택에 걱정이 한가득인 아내의 어깨를 토닥이며 살림집이 아니라 작업실이라고,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고 달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모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월세 보증금을 무기한 무이자로 빌려준다는 아빠 찬스에 신나 하며 한술 더 떠 에어컨 설치비 지원까지 안 되겠냐는 둥, 집에 있는 중국풍 장식장이나 여인초 화분도 가져가고 싶다는 둥, 너스레를 떨며 한창 들떠 있는 아들 녀석.


대학시절 하숙방에서 살다가 나 만의 공간인 원룸으로 이사 갈 때 행복해하던 내 모습과 많이 닮았다. 그리고 그 보증금 마련을 위해 은퇴하신 후에도 밤새 글 쓰셔야 했던 아버지의 사랑도 새삼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이천 도자예술마을에서 발견한 그릇 하나.


수국이 가득한 길 끝에 작은집 지붕이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담은 작품이 맘에 들어 살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었다.(작가 아들의 독립 기념선물로 사줄 것을...)

하늘에서 내려다 본 <집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한 아들아,

세상살이 힘들 땐 언제든 '우리'집으로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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