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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을 쓰다듬는 마음

부성애

by 본드형

아들이 돌아왔다.


드라마 세트장을 설치하는 아르바이트 중인데

경력에 도움이 되고 일당도 짭짤하다며

몇 주째 지방에 가 있던 참이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경제적 독립심을 키운다며

용돈을 끊어버린 무심한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돈벌이를 찾은 녀석이 기특하기도 안쓰럽기도 한 게

부모 마음이랄까...


오자마자

집밥이 그리웠다며

엄마가 차려 준 저녁상을 게걸스럽게 해치우고,

싸 온 빨랫감을 한 뭉텅이 내놓고

한 시간 가까이 샤워한 후 제 방으로 들어가더니

곧바로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도둑고양이처럼 다가가

잠든 얼굴을 조용히 들여다보는데

코밑과 턱밑에 어설프게 난 수염이 참 가소롭다.

(여자친구께서 수염 기른 남자가 멋있다고 했단다)


그리고

침대 위 이불 밖으로 빼꼼히 나온 통통한 발가락을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레 쓰다듬어 본다.


사는 게 만만치 않지?




쓰다듬는다는 것은

"내 마음이 좀 그렇다"는 뜻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어 그냥 쓰다듬을 뿐입니다.

말을 해도 고작 입속말로 웅얼웅얼하는 것입니다.


- 문태준 산문 <쓰다듬는 것이 열애입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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