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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Oct 03. 2024

하동에 살어리랏다 2

날씨 어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내가 날씨부터 챙긴다.


딱 춥지 않을 정도의 서늘함과

그 서늘함에 딱 어울릴 만한 파란 하늘이 보인다.


(감사합니다)


노란 평사리 들판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설렘으로

우린 서둘러 숙소를 나왔다.




어제 숙박집 주인의 팁대로

스타웨이란 전망대로 차를 몰고 올라갔는데

아직 입장시간이 많이 남아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흐린 구름이 저만치 밀려오는 게 보여

마음이 급해진 우리는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한산사가 있다는

정상 쪽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멀리서 들리는 목탁 소리가 궁금해지는 순간.


와~~


아내와 난 동시에 탄식을 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무들 사이로 살짝 보이던 풍경이 탁 트이더니

저 멀리 드넓은 평사리의 자태가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젖줄을 마시고 자란

황금빛 곡식들로 꽉 채워진 너르디 너른 평사리는

평생 살아오면서 본 가장 풍요로운 가을 장면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어쩔 줄 모르는 우리 옆에

덤덤한 표정으로 사진 찍는 작가의 모습까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었다.


(고맙습니다)


호기심 많은 아내는

어느새 한산사 투어를 시작했다.


중국의 유명한 절을 그대로 옮겨왔다는데

노란 국화가 놓인 입구부터 이름처럼 한산해 보였다.

(한자로는 '寒山' 즉, 추운 산이란 뜻이다)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성각까지 올라

노송 사이로 저 멀리 평사리와 섬진강을 내려다보면서

듣는 처마밑 풍경 소리는 왜 그리 여유로운지...


잠시 신선이 되어본다.


멀리서 봤으니 가까이도 봐야 한다며

우린 차를 타고 최참판댁을 지나 평사리로 내려갔다.


과연 추수를 기다리는 곡식들이

노란색 파도를 일렁이며 춤추고 있었고

그 사이를 마치 항해하듯 달려 지나는 우리는

풍요의 신세계를 찾아낸 탐험가의 뿌듯함을 맛봤다.


이런 곳에서 살면

아무리 무지렁이 촌부라도

멋진 글, 그림 하나 안 나올 수 없지...

 

언젠가 반드시 한달살이라도 꼭 해보리라

눈도장을 꾹 찍어두었다.




평사리 가을에 한창 정신을 팔리다 보니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그러고 보니 아침도 안 먹고 떠난 길이었.


화개장터에 유명하다는 옛날팥죽집에 들는데

가게 앞에 어린 고양이 두 마리가

장난을 치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아등바등 사는 우리와

알콩달콩 사는 그들.


누가 더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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