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참 간사하다.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조금 읽다 서랍 어딘가 처박아 두었던
한 시집을 찾았다.
소설 <채식주의자>가 부커상을 받았을 때
'한강'이란 작가를 알게 되었고,
작년 여름, 아들과 런던 여행을 갔을 때
큰 서점에 그녀의 책이 번역되어 전시된 걸 보고
신뢰감이 한껏 커진 상태에서
가을이 되었을 때
좋은 시를 읽고 싶은 마음에 몇 권 사 왔던
시집 중 하나가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였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나태주' 작품처럼 쉽고 따뜻한 시에 익숙해졌던 탓일까.
심장, 해부, 피, 겨울...
섬뜩하고 어두운 느낌의 단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으로 쓰인 시 몇 편을 읽다
멈추고 말았다.
(역시 소설책을 살 걸 그랬어...)하며.
모닝 알람이 울리기 1시간쯤 전에 깨어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한 권을 마쳤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시를 읽는 법을 잘 몰랐다는 사실을.
시는 이해하려고 읽는 게 아니라
그냥 느끼고 공감해 보려 노력하는 것이라는 걸.
작가님,
노벨문학상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중략)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