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이와 함께 하교하는 길. 삼십 도에 육박하는 불볕더위도 반갑다.
“교회는 잘 갔다 왔어?”
민준이 교실에서 내내 참은 질문을 한다.
“응.”
궁금한 게 많은데 영이의 대답이 짧다. 입안에서 혀를 굴리다가 민준은 한 번 더 묻는다.
“별일 없었어?”
“뭐, 똑같지.”
“아아…….”
말하기를 꺼리는 것 같아 관심을 거두려는 순간, 영이가 말을 덧붙인다.
“태영이는 중등부 성가대에 들어갔어.”
흰 가운을 입고 기묘한 동작을 하던 무리가 떠오른다. 중학생들만 모여 그러고 있는 상상을 하니 더욱 기괴하다.
“나, 태영이를 설득할 거야. 내가 교회에 나가는 한은.”
영이가 의지를 다지듯 입매에 힘을 준다. 그러고는 민준에게 묻는다.
“너는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그러게. 어떻게 하지? 이사 가야 할 것 같은데…….”
민준은 시치미를 뚝 뗀다. 영이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보자 내심 기분이 좋다.
“이사 가지 마…….”
“뭐라고? 잘 안 들리네.”
민준이 영이에게 귀를 갖다 댄다. 영이가 빽 소리친다.
“이사 가지 말라고!”
“알았어. 네가 원하니까 안 갈게.”
민준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작은아버지가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을 때 민준은 지금 집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작은아버지가 조금 놀라면서 이유를 물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영이와 함께 학교에 다니고 싶어서. 이 몸뚱어리로 3학년이 되면 또래보다 키가 좀 작겠지만 상관없다.
작은아버지는 한국의 법으로는 열네 살짜리가 혼자 살 수 없다며 윗선에 잘 말해두겠다고 했다. 월세나 공과금 같은 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작은아버지한테 연락을 하라고 했다. 또 부탁이 있냐고 물었다.
민준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두 가지를 부탁했다. 하나는 무슨 상담사나 전문가가 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했다. 작은아버지의 입김이 작용한 건지, 놀랍게도 그들의 방문이 뚝 끊겼다. 하지만 어제 반해신 경감이 지나가다가 들렸다면서 집 문을 두드렸다. 민준에게 안부를 묻는 그의 눈빛에서 석연치 않아 하는 듯한 표정을 읽었지만 모르쇠로 밀어붙였다. 곧 지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영이야, 네 번호 알려줘.”
민준이 영이에게 스마트폰을 내민다. 두 번째 부탁은 핸드폰을 사달라는 것이었다. 통화 기능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는데도 작은아버지는 이백만 원에 육박하는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주었다.
“어? 핸드폰 샀어?”
“작은아버지가 사주셨어.”
“완전 잘 됐다. 이제 톡으로 계획 짜자.”
“무슨 계획?”
“난 육 년 뒤에 집을 뜰 계획을 세울 거야. 넌 어떻게 할래? 나랑 같이 갈래?”
“난 그때도 이 모습일 거야.”
“뭐 어때? 아는 동생이라고 하고 내가 데리고 다니면 되지.”
“넌 결혼도 해야 하잖아.”
“아, 그러네. 귀찮은데 너랑 할까?”
민준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이 붉다. 그걸 본 영이가 이를 드러내며 웃고는 말한다.
“이 새끼, 부끄러워하기는. 누나가 먼저 성인 돼 보고 결정할게. 그때도 너를 보고도 구미가 당기는지.”
“구미? 내가 음식이야?”
“그럼 난 음식이야? 왜 먹이라고 했어?”
“그건 미안해.”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미안하다고!”
민준이 고래고래 소리친다. 그 소리가 자글자글 타오르는 태양까지 솟아 올라간다.
-끝 -
표지: Copilot로 제작